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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7-01-22
 제목  마그다 코흘러(Kohler, Magda, 1887-1913) 구세군 선교사
 주제어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구세군 사관 스웨덴
 자료출처  양화진선교회  성경본문  
 내용

마그다 코흘러(Kohler, Magda)는 1887년 6월 10일 스웨덴에서 출생하였다.


1911년 스웨덴 구세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스웨덴에서 한국에 파송하는 제1진의 해외 선교사로 선임되어 1911년 12월 24일 독신으로 내한하여 제1대 사령관 호가드의 비서로 일했다. 구령(救靈)사업에 헌신하였으며 열성이 대단하여 한국말을 배운 뒤, 시골로 다니면서 많은 한국인과 가까이 하려 노력했다.

순회 전도를 마치고 경북 의성(원당) 지방에서 자원하여 담임사관으로 헌신했다. 호가드(Hoggard)사령관 부인과 함께 경북지방(노매실, 원당, 소일)을 순회하면서 5-6백리의 멀고 험한 길을 마다 않고 걸어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다.

장티프스 때문에 숨진 사람들을 수습해 주는 등 원당지역에서 주민들에게 많은 감화를 끼쳐 그를 아는 한국인들은 ‘고월라(高月羅)’라는 한국 이름을 모방하여 자녀들의 이름을 지을 정도로 본이 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그가 열정적인 봉사와 사랑으로 감화를 끼쳤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13년 그는 의성에서 장티푸스 환자를 돕다가 자신도 감염되어 의성(원당)에서 대구에 이르는 150여리를 들것에 실려 대구동산병원으로 옮겨져 입원하였다. 그를 치료하기 위하여 서양 의사와 서울에서 내려간 간호원의 전담 간호를 받았으나 1913년 5월 23일 별세하였다.

호가드 사령관은 그의 시신이라도 서울(양화진)로 운구하려 하였으나 성사시키지 못하였다. 그가 별세 한 뒤 그를 추모하여 플로렌스(Florence Riley)는 1913년 7월 코리아 미션 필드에 “Memorial Tribute to Captain Magda Kohler”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한 전도 행적 등을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그의 어록으로는 "예수를 위한 고난을 감수할 것과 예수의 십자가를 나누기를 원하여 기꺼이 고난을 당하기 원한다"는 내용도 쓰여 있다.

그는 순직 후 일 계급이 특진되어 정위가 되었다. 그 후 그의 유해가 대구 동산병원 구내에 묻혀있는 것을 확인하고 2000년 9월 27일 구세군 선교사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양화진 제2묘역(다-23)으로 이장되었다.

스웨덴 선교사에 관심을 가지고 조사하였으나 관련 문헌 등 자료 수집에는 한계가 있었다. 역사는 기록되어야 하고 반드시 전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고 있을 때 한가지 기쁜 일이 생겼다. 한국에서 도저히 구할 수 없던 스웨덴 선교사(코흘러, 프릭, 에이커홈) 3인의 선교사 사진을 스웨덴에 살고 있는 '선민 리' 가 보내주었다. 오래되어 빛이 바래지고 상태가 좋지 않지만 한국에서 처음 소개되는 사진이다.


유럽에 있는 스웨덴에서 한국에 파송된 구세군 선교사는 다섯 차례에 걸쳐 모두 12명이다. 최초의 스웨덴 선교사는 코흘러(Kohler, Magda), 프릭(Frick, Sofia), 우을선(Olsson, Verna)이다. 이들은 1911년 12월 24일 여성 독신선교사로 내한하였다.

스웨덴에서 처음으로 온 선교사들을 환영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는데 이건영 통역은 그들이 남편이 없다는 말을 듣고 ‘독신을 과부’로 잘못 통역하였다는 웃지 못 할 후일담이 전해진다.
제2진으로 파송된 선교사는 1914년 여섯 명이었다.

어륵손(Ericksson), 하변천(Havenstein), 인귀지(Lindquist), 위설영(Westhling), 옥거흠(Akerholm)부부 등이다. 그 후 1915년에 변세돈(Bersten)선교사, 1926년에 두영서 사령관 부인(Toft Mrs.), 1928년에 이대전(Ryden)선교사 등이 계속하여 내한하였다.

이들 가운데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여 양화진 묘역에 묻힌 스웨덴 출신의 구세군 선교사는 두 사람이다. 서울에서 4개월 간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1912년 4월 29일 별세한 프릭 선교사가 첫 번째이고, 다음은 경북지방에서 1년 5개월간 담임사관으로 헌신하다가 1913년 5월 23일 별세한 코흘러 선교사이다.

◇ 마그다 코흘러 구세군 여성 사관(1887-1913)

양화진 묘역에 안장된 스웨덴 선교사를 기억하여 찾아보는 방문객은 극히 드물다. 지난해 스웨덴에서 코흘러 선교사를 주제로 학위 논문 준비를 위하여 자료 수집 차 내한한 '선민 리' 씨가 찾아왔다. 그는 코홀러의 기록을 더듬으며 대구와 서울 등지를 여러 날 수소문 하며 돌아다녔다고 한다.

코흘러 선교사에 관하여 어떤 정보나 자료를 수집하지 못하여 실망하고 있다가 필자와 만남을 통해 코흘러의 묘지가 대구에 있었다가 양화진으로 이장하였다는 정보를 주면서 몇 가지 기초 자료를 건네주었다.

 

 

>> 목차고리 : 신학 > 선교 > 선교사

>> 연결고리 :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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