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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7-01-22
 제목  마리 위더슨(Mary Ann Widdowson, 1898~1956) 선교사
 주제어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자료출처  양화진선교회  성경본문  
 내용

마리 위더슨은 1898년 4월 4일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출생하여 부모를 따라 남아프리카 케이프 타운으로 이주하였다. 성장하면서 천성이 온순하고 신앙이 돈독하였다. 1925년 요하네스버그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남아프리카 영문 담임사관으로 일했다. 이때 크리스 위더슨을 만나 1926년 약혼하였다.

1927년 가을 결혼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먼 길을 외롭게 떠나 1927년 가을 부산을 경유하여 서울에 도착하여 결혼했다. 남편(Chris)을 내조하며 선교사로서 고아원을 운영하였다. 1934년까지 7년간 한국에 살았으며 이때 첫 아들을 낳았다.

이 아들은 고아들의 친구가 되었다. 고아들은 주로 거리에서 데려온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항상 전염병의 감염과 위협을 면할 수 없었다. 어느 날 크리스가 전염병으로 앓게 되고 부인 마리도 발진티푸스로 앓아눕게 되었다. 그는 고열로 헛소리를 하면서 며칠동안 의식을 잃은 일도 있었다.

의식을 회복하고 첫 걱정으로 고아들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하였다.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아이들을 잘 보살폈다.

그 후 1934년 2월 한국을 떠나 아프리카 케냐에서 봉직하였다. 위더슨 부부는 1953년 1월 19일 한국 전쟁 기간 중 한국과 한국인을 위하여 부산으로 다시 돌아 왔다. 6∙25전쟁으로 폐허화된 상황 속에서 구세군을 다시 조직하고 부흥시켰다.

이때 남편은 구세군 사령관으로, 부인은 고아원 원장 겸 가정단 총재로 봉직하였다. 그들은 한국에서 고난과 희생을 감수하면서 진정으로 한국인을 사랑하고 한국을 위하여 봉사하였다. 위더슨 부인은 위암으로 투병하면서 크리스마스 자선냄비 때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거리로 나와 전도지를 뿌리며 동료들을 격려했다. 병상에서 글로 써 가정단 사업을 독려하기도 했다. 


그는 죽음 앞에서 사령관 남편에게 “나는 어린 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내가 죽어도 서러워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부탁합니다. 오늘 나는 한국 땅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살게 됨을 무한한 기쁨으로 압니다.”라고 유언 했다.

그는 귀국을 원하지도 않았다. “한국에서도 하나님 나라로 갈수 있다.”고 하면서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면서 1956년 5월 10일 서울에서 별세하였다. 장례식 때에 그를 조문하는 60여대의 자동차가 늘어섰으며 이승만 대통령과 김태선 서울시장 등 주요인사 90여명의 조객록이 작성되었다. 묘비는 1956년 9월 17일 건립되었다.




◇ 크리스 위더슨(Chris W. Widdowson) 구세군 사령관

크리스 위더슨(Chris W. Widdowson, 魏道善)은 1926년 11월 내한하였다. 한국 구세군 사령부에서 정위로 8년간 봉직하다가 1934년 2월에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케냐에서 총무서기관으로 일하다가 구세군 한국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1953년 1월 9일, 한국 전쟁 기간 중 구세군 사령관으로 부산 수영공항에 도착하였다. 그는 내한하여 사관회의를 주재하였으며 해군 장교구락부에서 한국기독교연합회와 구세군이 공동으로 주최하며 신익희 국회의장 등이 임석한 환영식에 참가했다. 한국사령관으로 일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주요 업적으로는 첫째 54명의 사관을 배출하고 13개소의 전장부를 신설하거나 재건하였다. 둘째 19개소의 건물을 신축하거나 개수하고, 7개소의 사회사업소를 개설하였다. 셋째, 서울(아현, 마포, 돈암, 영등포 등), 부평, 춘천, 대구, 부산 등지에 급식소를 신설하여 월 평균 5천명에게 음식을 나눴다.

이밖에 245,673명에게 일반구제 사업을 펼쳤으며 영동병원을 통하여 입원 및 외래환자를 돌보아 주었다. 그는 사랑하는 부인과 한국에서 사별하고 1957년 8월 1일 사령관직을 사임하고 돌아갔다.

 

 

>> 목차고리 : 신학 > 선교 > 선교사

>> 연결고리 :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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