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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7-01-22
 제목  사무엘 F. 무어(Moore, Samuel Forman, 한국명 : 牟三悅, 毛三栗, 1860~1906) 선교사
 주제어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백장해방운동 서민 선교사 신분제도철폐
 자료출처  양화진선교회  성경본문  
 내용

사무엘 F. 무어 선교사는 1860년 9월 15일 미국 일리노이 그랜드리지(Grand Ridge)에서 목사 아들로 출생했다. 1889년 몬타나 (Montana)대학을 마치고, 시카고의 매코믹신학교를 졸업(1892) 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무디의 부흥운동을 통하여 감동을 받은 많은 학생들이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을 가지고 선교사를 지망했다. 무어 선교사도 그런 젊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1892년 8월 16일 부인 로즈 엘리(Rose Ely Moore)와 함께 한국을 향하여 샌프란시스코 항을 출발했다. 배편으로 호놀룰루와 일본의 요코하마, 부산-인천을 경유하여 목선으로 강화도를 지나 한강을 거슬러 양화진 나루에 도착했다. 1892년 9월 21이었다.

여자들은 가마를 타고 남자들은 걸어서 성안으로 갔다. 남대문에 도착해보니 이미 성문은 닫혀 있어 성안으로 들어 갈 수가 없었다. 성벽 아래쪽에 개구멍이 있어 브라운 아들은 거기로 기어 성안으로 들어갔으나 어른들은 체구와 체통 때문에 시도조차 못했다. 하는 수 없이 6m 되는 높은 성벽에 로프를 걸어 벽을 타고 넘어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서울에 도착한 그는 선교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한국어를 배우는 일부터 착수했다. 한국어 선생을 두어 매일 방문하도록 하여 공부했다. 이 무렵 그는 한국어를 배우는 일 이외에 마펫(Moffett)선교사의 성경공부 반을 도왔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성경을 장과 절까지 말하며 척척 외우는 것이 신기하고 기특했다. 

그들이 각 처로 흩어져 성경을 가르치며 전도자로 일할 것이므로 신학반 인도는 더욱 기대를 부풀게 하는 일이었다. 어서 빨리 한국어에 능통하여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얼마 후 그의 한국어 실력은 자신도 놀랄 정도로 급속히 늘었다. 약 반년이 지난 1893년 3월 19일 주일에는 한국인들과 쉬운 말로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예배순서에서 한국말 기도를 담당했다.

1893년 6월, 곤당골 높직한 곳에 2층집을 지어 터를 잡았다. 무어 부인은 집 구경하러 온 이웃 아낙네들에게 재봉틀도 보여 주어 그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환심을 샀다. 약 9m 깊이로 판 우물에서는 다른 집보다도 수질이 좋아 이웃사람들과 나누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선교활동을 하면서 어느 해에는 100명에게 세례를 집례 하기도 했다. 특히 서울에서 백장(白丁)을 대상으로 많은 선교 활동을 하였으며, 양반과 천민이 함께 예배하도록 하는데 전력하였다.

1896년 에비슨 선교사와 협력하여 천민의 권익 보장을 위해 고종 임금에게 탄원하기도 했다. 그 결과 조정에서는 복장제한(服裝制限) 제도를 철폐하여 양반과 천민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데 기여했다. 이 같은 그의 업적으로 인하여 그를 가리켜 “백장 해방운동의 지도자”라 칭호가 붙여졌으며, 사랑의 사도라는 또 다른 호칭으로 천민 층에 복음을 전하여 많은 존경을 받았다.

그는 1893년 3월 19일 승동(곤당골)교회 설립을 비롯하여 대현교회, 동막교회 등 25개의 교회를 설립했다. 1906년 7월 12일에는 그리스도 신문 사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장티푸스로 인하여제중원에서 진료를 받다가 15년간의 선교사역을 중단하고 1906년 12월 22일 별세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그의 묘비에는 우리말로“조선 인사를 사랑하였고 또 그들을 예수께로 인도하기를 원하였다.”라 기록되었다.

그리고 영문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충성된 종, 아름다운 인격과 정신의 소유자, 한국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다(Devoted servant of Jesus Christ Beautiful in character and spirit, unselfish in his love for the Korean people)'라는 기록도 있다. 비문이 6·25 전쟁 때 총탄으로 파손되어 판독에 어려움이 있다.

부인 로즈 엘리(Rose Ely)선교사는 그가 별세한 뒤 얼마동안 한국에 머물다가 1907년 11월 18일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귀국하였다. 무어 부부는 3남 1녀의 자녀가 있다.

 

 

>> 목차고리 : 신학 > 선교 > 선교사

>> 연결고리 :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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