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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7-01-22
 제목  J. L. 저다인(Gerdine, Joseph Lumpkin 全約瑟, 全堯燮, 1870-1950) 선교사
 주제어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자료출처  양화진선교회  성경본문  
 내용

◇ 부흥운동과 성서공회 회장 등으로 활동한 J. L. 저다인 선교사

J. L. 저다인(Gerdine, Joseph Lumpkin 全約瑟, 全堯燮)은 1870년 7월 13일 미국 앨라배마주 픽켄스에서 출생하여 조지아 대학을 졸업했다. 1898년 조지아주 엡윗청년회 회장으로 평신도 운동을 하였으며 1902년 조지아 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02년 11월 미국 남감리회 선교사로 내한하여 1903년-1906년 까지 원산과 개성에서 하디와 함께 부흥운동의 중심인물로 사역하면서 성도들에게 성령을 체험하게 했다. 한국교회에 부흥의 불씨를 일으켜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으로 확산 시킨 선교사이다.

박명수의 ‘한국교회 부흥운동 연구’(선교사들과 대부흥운동)에 의하면 “저다인은 1906년 1월 함흥의 캐나다 장로교회에서도 부흥회를 인도했다. 그는 조용하고 신사적인 방법으로 설교했다. 그의 설교는 성경의 직접적인 인용이 많았다. 죄를 회개케 하는 것은 성령의 능력이다. 그러나 이것을 넘어서서 더욱 놀랍고도 묘사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모습들이 있다. 그것은 사죄의 확신, 온전한 순종에서 오는 행복, 하나님에 대한 찬양, 성령의 세례이다”라고 했다.

저다인은 세계적인 부흥운동에 대하여 선교 잡지(The Korea Mission Field, 1905.4월)에 “영국의 웨일즈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의 놀라운 역사는 호주에서도 나타났고, 미국의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대 각성(覺性)운동이 같은 시대에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느냐?” 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도 부흥사경회라는 새로운 형태의 집회에서 성경을 읽고 공의와 절제와 심판, 그리고 죄의 무서움과 뉘우침의 필요성을 전했다.

1908년에는 서울로 옮겨 데라우찌(寺內正毅) 총독 암살 미수사건(105인 사건)으로 한국기독교인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변호를 자청하여 무고하게 억압 받은 피의자들의 조속 석방을 위해 도움을 주었다. 1909년에는 ‘남감리회 한국선교회’ 제13대(1909.9.2) 연회장으로 선임되었다. 그는 1910년-1913까지 서울 YMCA 제3대 회장으로도 활동했다. .

1911년 6월에는 교육조사국(Educational Information Bureau) 설립에 언더우드선교사와 함께 참여하여 전국의 선교사들을 돕고 모든 종류의 학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교육 공지사항을 번역하고 배포하는 등 교육선교사업의 임원(회계)으로 활동했다.

1911년 7월 5일 성서회관 정초식(定礎式)이 거행될 때 성서위원회 위원장으로 사회를 담당하고, 같은 해 9월 26일에는 한국성서위원회 가을 정기회의를 주관하였다.

1912년 봄, 무교동 전도관(중앙교회) 헌당식과, 그해 가을 경성성서학원 개강 집회에서도 말씀을 전했다. 서울 YMCA 특별집회에서도 설교하였으며, 미 남장로회 선교사 프레스톤(Preston)의 초청을 받아 목포에서도 부흥집회를 인도하는 등 폭 넓은 말씀으로 놀라운 결과를 이룩했다. 그 후 1915년부터 1919년까지 대한성서공회(기독교서회)회장으로 봉직하였고, 개성에서 1922년부터 3년간 전도활동을 계속하였다.

1926년 미국 남감리회와 북감리회를 통합하기 위한 ‘남ㆍ북감리회연합 기성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6년부터 1936년까지 10년간 감리교 신학교 교수로 봉직했다. 1937년 귀국하여 1939년 은퇴하고 조지아 주에서 거주하다가, 1950년 3월 13일 플로리다 주 크레센트에서 별세했다.



◇ 단 하루를 살다가 양화진에 묻힌 저다인 2세(1915-1915)

J. L. 저다인의 아들 조셉(Gerdine, Joseph Lumpkin Jr.)은 1915년 11월 19일 한국에서 출생하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인 11월 20일 사망하였다. 세상에서 단 하루를 살다가 한 알의 복음의 씨앗으로 땅에 묻혔다.

한국교회 부흥운동을 주창한 선교사의 귀한 아들로 한국의 기후 풍토와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양화진 제1묘역(나-4)에 잠들었다. 이렇게 저다인 선교사 부부는 한국교회 부흥과 성서공회 및 YMCA 발전을 위하여 헌신하고, 어린 아들을 양화진에 묻으면서까지 선교 활동에 마음을 다했다.

 

>> 목차고리 : 신학 > 선교 > 선교사

>> 연결고리 :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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