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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7-01-22
 제목  U. F. 말그라(Di Malgra, Ugo Francesetti, 1877~1923)
 주제어  [외국인] 통역관 이탈리아
 자료출처  양화진선교회  성경본문  
 내용 U. F. 말그라는 1877년 2월 19일 이탈리아 토리노(Torino)에서 출생하였다. 어린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하여 소위로 임관되었다. 1900년 중국 북청사변 때 기독교인과 서방인 들은 폭도들에 의하여 대량 학살되었다. 이때 서방 국가들은 자국의 국민을 보호하고 중국 정부에 폭동 진압을 돕기 위하여 전함과 군대를 파견하였다. 말그라는 중국에서 이 작전에 참가하여 활동하다가 한국으로 내한한 최초의 이탈리아 외교관이 되었다.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 행정관에 의하면 한국과 이탈리아는 1884년 6월 26일 한∙이조약이 성립되었으며 1886년 7월 24일 비준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정부는 15년 이상 지나도록 한국에 영사나 대표부를 설치하지 않았다.

그 후 1901년 12월 8일 말그라가 이탈리아 외교관으로 서울에 처음 도착하였으며 일주일 후 그의 신임장이 고종황제에게 제정되었다. 서울의 미국장로회선교부 건물을 빌려 집무했다. 급격하게 증가하는 외국인 사회에서 환영을 받았다. 이 무렵 서울과 인천에는 4백여 명의 서구인들이 살았고, 서방 국가의 기선(汽船)과 전함들이 격일로 드나들었다. 외국인들은 여러 형태의 동아리 모임을 조직하였으며, 각국 외교관들도 그들만의 클럽이 있었다. 이때 말그라는 24세 젊은 미혼 남자로 교육과 수양을 겸비하여 수명의 미혼 여성들로부터 관심을 끌었다.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의 로버트 네프(Robert Neff)는 양화진에 담긴 사연(2005.2.19)을 필자에게 제공해 주었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말그라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미국 총영사 패독(Gordon Paddock)과 벨기에 부영사 쿠벨리어(Maurice Cuvelier)였다. 그런데 이들의 우정은 미국 사업가 콜브란(Henry Collbran)의 딸 크리스틴으로 인하여 문제가 생겼다. 즉 벨기에 부영사 쿠벨리어는 크리스틴(Christine)에게 매혹되어 청혼 하였으나 거절당했다. 한편 크리스틴은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탈리아 공사 말그라를 좋아했다. 그 후 미국 총영사 패독이 가세하여 이들의 3각 관계는 매우 복잡하게 되었다. 어느 미국인 선교사는 크리스틴의 결혼 문제는 이상하게 꼬였다(The Collbran marriage was ever a queer thing) 표현 했다.”

이 무렵 젊은 외교관들과 외국 사업가의 자녀, 그리고 젊은 미혼 선교사들은 서로 간에 교제를 나누었다. 테니스, 승마, 등산 등을 함께 하면서 교제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1902년 9월 서울의 외국인들에게 큰 위험이 다가왔다. 레라 전염병이 번져 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장티푸스 전염병도 발생하였다.

이로 인하여 러시아인의 통역관이 사망하고, 오스트리아 방문객도 사망하였다. 말그라와 크리스틴에게도 큰 위험이 찾아왔다. 말그라는 열로 인하여 앓아눕게 되었는데 진단해보니 장티푸스로 판명되었다. 두 젊은 간호사가 자원하여 그를 극진히 보살피고 의사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하였으나 결국 1902년 10월 12일 별세하였다. 그를 사랑했던 크리스틴도 한달이 조금 지난 1902년 11월 18일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한국 땅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양화진에 묻혔다. 그들은 제1묘역 마열에 2번과 11번에 나란히 묻혔다. 그리고 그 사이에 미국 총영사 패독의 아들(Ginchi)이 1908년 3월 1일 사망하여 묻혔다. 양화진에는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전염병으로 죽어간 이들 젊은이들의 사연이 담겨있는 장소가 되었다.

말그라의 장례식은 명동성당에서 정부 관리들과 외교관 등이 참석하여 집례 되었다. 경찰과 군인 의장대가 동원되고, 양화진으로 운구 되어 제1묘역(마-2)에 묻혔다. 그 후 12월 20일 그의 어머니는 딸과 함께 이탈리아 군함(Lombardia) 편으로 인천에 도착하였다. 말그라의 시신을 이탈리아로 이장하기 위해서였다. 3일후 한국을 떠났다. 그들은 빈 무덤 한쪽에 이탈리아어로, 다른 한 쪽에 영어로 쓰인 비석과, 이루지 못한 사랑의 사연을 양화진에 남기고 떠나갔다. 묘비에는 “He the young and strong who cherished noble longings for the strife by the roadside fell and perished(숭고한 갈망을 소중히 여기든 그 젊고 강한 자는 쓰러졌고 죽었다.)”

양화진에는 또 다른 이탈리아 외교관 카세티(Casati, Luigi, 1850~1909) 묘도 있다. 제1묘역(나-12)에 위치하며 그는 1850년 9월 29일 출생하여 1909년 12월 11일 별세하였다.

결국 한국의 기후 풍토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 생활 7년 만에 25세의 나이로 1923년 4월 18일 서울에서 별세하였다. 장례식은 정동교회에서 스티븐스(Stevens, William, 한국명: 신태빈) 구세군 사령관 인도로 집례 되었으며 양화진 제2묘역(가-5)에 안장되었다. 양화진에 건립된 그의 묘비에는 ‘평안히 잠드소서(Rest in Peace)’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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