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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7-01-22
 제목  메리안 B. 홀(Hall, Marian Bottomley, 1896~1991) 셔우드 부인
 주제어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미국] [의료 선교사] 결핵사업
 자료출처  양화진선교회  성경본문  
 내용

메리안 버텀리 홀은 1896년 6월 21일 영국 엡워드(Epworth)에서 출생하여 1911년 캐나다로 이민하였다. 온타리오주 아덴 고등학교 4년제 과정을 3년에 마쳐 마을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킹스턴학교(교사양성과정)를 이수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1917년 미국 루츠타운학교 교사로 전임하여 전교에서 가장 규율이 잘 잡힌 반으로 만들었다.

1918년 4월 유니온대학 재학 중 셔우드와 약혼했다. 1920년 9월 필라델피아 여자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졸업 후 1922년 6월 21일 결혼하여 켈로그 결핵요양소(Kellogg Sanatorium)에서 함께 결핵 실무를 익혔다. 1925년 8월 15일 미국감리회 선교사로 임명되어 미국을 출발했다. 메리안 부부는 런던을 경유하여 스웨즈 운하, 아테네, 봄베이, 콜롬보, 싱가폴, 홍콩 등 8개월의 긴 여행 끝에 1926년 4월 10일 일본의 코베에 도착하였으며, 1926년 4월 19일 내한하였다.

해주구세병원과 요양원에서 의료선교사로 활동하면서 결핵 퇴치와 크리스마스실 발행에 앞장섰다. 1928년 5월 7일‘어머니와 어린이를 위한 복지 클럽’을 시작하였으며, 해주를 중심으로 의료 선교 활동을 통하여 절망에 빠져있던 환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해주요양원 설립 10주년 때 기고한 선교잡지(Korea Mission Field, 34-7,1938.7)에는 “요양원 설립 10주년을 맞는 오늘, 감회 깊게 시작 당시의 그 어려움들을 되돌아본다. 마치 신비한 힘으로 모든 게 이뤄진 것같이 느껴진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주신‘꿈’이었고 그 꿈에 성실히 매달렸기에 하나님께서 이를 성취시켜 주셨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우리가 어려울 때 하나님은 친구들을 통해 도와 주셨고, 우리의 온갖 난관은 극복되었다. 이제 이곳은 절망에 빠졌던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얻는 장소가 되었다.”-메리안 B. 홀-

1940년 홀 부부는 간첩 협의로 재판까지 받았다. 10월 25일 변론 기록에는“남자 의사들이 거절한 일도 만삭인 몸에 위험을 무릅쓰고 추운 겨울밤 환자를 보러나가 시골에 앓아 누어있는 청년의 생명을 구했다.”고 메리안을 칭찬했다.

1941년 일제의 강압으로 한국을 떠나 인도에서 결핵사업을 계속하였으며 1963년 은퇴하고 캐나다로 돌아갔다. 1991년 9월 19일 밴쿠버에서 95세로 별세하여 9월 25일 리치몬드 사우스 암교회에서 장례식이 집례되고, 유해는 한국으로 돌아와 결핵협회장(葬)으로 10월 5일 양화진에 안장되었다.(국민일보 1991.10.7일자 참고)묘비에는 Marian Bottomley-Wife of Sherwood Hall 이라 쓰여 있다. 그리고 자녀들의 이름도 쓰여 있다.

 

>> 목차고리 : 신학 > 선교 > 선교사

>> 참고고리 : 남편  제임스 홀, 아들 셔우드 홀

>> 연결고리 : 미국, 선교사, 내한 선교사, 의료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 바깥고리 : 닥터 윌리암 제임스 홀 선교사가 남긴 1890년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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