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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성경지명  작성일  2007-01-02
 제목  나인(Nain)
 주제어  
 자료출처    성경본문  눅 7:11
 내용

뜻 : 아름답다

 

나사렛 남동쪽 9.6km지점이고, 가버나움 남서 40km지점에 위치한 갈릴리 지방의 한 성읍.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곳(눅 7:11).

 

나인성의 과부(눅 7:11-18) 

예수님께서 만나신 여인 중에서 나인성에 있던 과부는 참으로 비통한 가운데 있던 여인이었습니다.예수님께서 관심을 갖고 만나신 사람들은 거의 다 비슷한 환경 속에서 있던 사람들이었습 니다. 예수님께서 만났던 여인들은 불운과 비극과 고통 가운데 있었던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에 예수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고통 속에 있으며 당시 에 죄인이라고 일컬음을 받던 사람들입니다.그렇다면 우리의 관심도 마찬가입니다. 환란과 고통 속에 있는 사람, 불운하며 불행한 사람들에게 우리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하며 우리가 관심 을 가져야 합니다. 나인성에 있던 이 여인은 상당히 불운한 사람이었습니다.아들의 죽음을 통해 괴로움을 당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만나주십니다. 나인성 과부의 이청년은 예수님께서 살 려주신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간을 초월하시고 사람의 연령과 목숨까지도 초월하십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계십니다. 죽었던 시체에게 '일어나라'고 말했을 때에 죽은 시체도 다시금 생명을 부여받게 됩니다. 사람이 생명이 떠났다고 하는 것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라고 말할 때에는 영과 육이 합일점을 갖고 있어 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사건은 '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능력을 보 여주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고통을 동정하며, 아들의 죽음에 애타하는 어머 니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시고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불쌍히 여기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아들 때문에 예수님을 얻게 되었습니다. 본문의 전체적인 맥락을 볼 때에, 만일 이 여인의 아들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예수님 께서 특별한 목적이 있고 이 여인을 선택하셨다면 만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 전체 를 볼 때에 예수님께서 나인성에 들어간 사건은 이곳에 밖에는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인성 에 한 번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에 다른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누가 복음을 통해서 보면 예수님께서 이 아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나인성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인성 과부는 아들로 인해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아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은 이 여인에게는 가장 비통한 순간입니다. 이러한 고통 가운데 서 예수님을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 여인이 당하고 있는 고통은 반드시 괴로움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은혜이며 큰 영광입니다 그 아들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 도를 만날 수 있는 은헤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작은 고통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 게 되며 체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고통과 환난이 내게는 유익이라'고 말합니 다.어떻게 고난이 나에게 유익이 될 수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고난 때문에 넘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고난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면, 그 고난은 우리에게 있어 좌절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영광이 됩니다. 예수님께는 바로 이런 사람들 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여러 가지 고통으로 인해 더욱더 하 나님을 찬양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이러한 고통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을 많이 합니다.나인성의 과부는 고통 때문에 은혜를 받은 여인입니다. 만일에 이러한 고통이 없다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만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가 견디지 못할 시험을 주지도 않을 뿐더러 이기지 못하면 피할 길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두번째는 예수님 때문에 아들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만나서 위로하십니다. 또한 아들을 살려주십니다. '이 청년이 살아났고'하는 것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가능하게 되었 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사람이 죽게 되면 즉각 장례를 치룹니다. 그런면에서 볼 때에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은 장례 행렬 도중에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다시 말하면 죽은 자의 행렬과 예수님, 즉 산 자의 행렬이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 희망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서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만일 교회가 이러한 일을 하지 못하면 교회가 교회답지 못합니다.아들이 살게 됩니다. 15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라고 말씀합니다. 이 아들을 살리신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미에게 아들을 주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말 하면 그 아들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첫번째 생명을 주셨는데 이 아들이 불의로 말미암아 죽었을 대에 두번째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생명을 부여하십니다. 자연도, 죽은 자도 예수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이 여인은 다시금 아들을 얻게 됩 니다.

세번째, 큰 외로움 때문에 큰 기쁨도 얻은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과부였기 때문에 상당한 외로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 청년은 과부의 독자이며 세상의 어떤거승로도 바꿀 수 없는 희 망이었지만 아들이 세상을 떠남으로 이 세상이 모든 것을 잃는 것 같은 슬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아들을 다시 살림으로 큰 소망과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아들로 인해 예수님을 만났고, 이제는 아들로 인해 기쁨을 누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얻었습니다.이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새로운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게 될 때에 생애의 전부가 아들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정 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생애에서 전폭적으로 의지해야 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 니다. 이 여인은 아들을 얻고 예수님을 얻고 더 큰 기쁨을 얻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울지 말라"라는 한 마디만 하십니다. 이 말씀이 무엇 을 의미합니까? 이 여인의 고통과 외로움과 슬픔을 달래는 말입니다. '울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울지 않아도 된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이 여인이 울지 않을 수 있도 록 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여인에게 더 귀한 것은 아들을 얻었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된 것입 니다. 우리 마음속에도 때때로 괴로운 일들이 있으며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이 우 리를 좌절하게 할 수 없습니다. 이 고통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줍니다. 고 통이 클수록 예수님은 더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우리의 모든 고통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동 기가 되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고통 때문에 잃었던 것도 다시금 되찾게 되고 또한 큰 소망과 기쁨도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성희 담임목사 / 1995.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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