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ite   게시판   메일   M1000선교사홈   Mission Magazine
 

 

  사전등록   히,헬 폰트받기
 현재위치 : HOME > 문서보기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6-12-26
 제목  박희도(朴熙道, 1889~1951) 민족대표 33인중 한 사람
 주제어  [한국인] 33인중 한사람 중앙대학교
 자료출처  목양신문  성경본문  
 내용

1."교육입국"의 뜻을 품고

박희도는 황해도 해주에서 박계근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해주에 있는 의창학교를 졸업했으며 16세에 기독교에 입신하였다. 이후 그는 평양 숭실중학교에서 수학했다. 1916년 서울로 이주하여 "교육입국"의 뜻을 품고 1917년 영신학교 (매동국민학교의 전신)을 설립하였다. 또 평양숭실재학 시절 인연을 맺었던 감리교선교사 벡케(A.C.Becker)가 교장으로 있던 협성보통학교 부교장직도 역임했다.

한때 감리교 협성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였으나 도중에 그만두었던 그는 1918년 미감리회에서 전도사로 파송받아 창의문밖교회에서 시무하기도 했다. 한편 그는 장낙도,유양호 등과 힘을 합하여 정동교회 유치원의 본원으로 1916년 중앙유치원을 설립하여 운영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오늘의 중앙대학교의 전신이 되었다. 또 1918년 9월 서울 YMCA회우부 간사직을 맡게 되어 청년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2. 독립운동을 준비 (청년운동전개, 장.감연합의 계기 마련)

이러한 그의 사회적 위치는 3.1운동에 있어서 그의 능력을 발휘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특히 당시 서울 YMCA는 민족지도자 그중에서도 청년지도자의 구심점이었는데 그는 여기서 회원들을 관장하는 직책을 맡아 어느 누구보다도 3.1운동의 준비와 거사에 깊이 참여하는 인물로 등장했다.

당시 그는 수원지방에서 목회하고 있던 동석기목사를 통해 세계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종식됨과 동시에 한국독립의 기회가 온 것을 감지하고 교회와 청년학생들을 중심으로 거족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할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우선 YMCA 청년부 회원 중에 신망이 있는 청년들을 골라 준비작업에 착수했다.이때 그에게 포섭된 인물이 경성의전 학생 한귀건 연희전문 학생 김벽원이었고 이 둘이 다시 서울 학생 중 강기덕,윤자영,김형기,주종선 등을 끌어 들여 YMCA를 중심한 학생운동 세력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처음 박희동 등 학생들은 학생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려 했으나 1919년 서울에서 열렸던 미국 감리회선교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던 원산의 정춘수 목사를 통해 이승훈을 중심으로 기독교와 천도교가 합작으로 독립운동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게 되어 학생세력도 이에 합력하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그는 이후 수차에 걸려 박동완, 정춘수,이승훈, 이명룡,길선주 등 민족대표들과 만나 3.1독립운동 계획을 추진시켜 나갔다. 무엇보다도 그는 독립운동을 하면서 이를 장.감연합의 계기로 만들었고 나아가 종교를 초월한 거국적 운동으로 발전시키는데 실무적인 역할을 했다.

3. 옥고를 치루고 교육사업에 헌신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그는 거사 당일인 3월5일 명월관에서 다른 민족대표들과 체포되었다. 3.1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그는 2년의 징역형을 언도받았다.

출옥후 그는 문서를 통한 민족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벡커와 함께 1992년 3월 <신생활> 을 창간하여 민족계몽운동을 추진했다. 그러나 창간되자마자 일제의 압력이 가해져 2회에 걸려 압수 처분을 받았고 그해 11월에 잡지는 폐간되었다. 그리고 그는 주필 김명식, 기자 신일용과 함께 체포되어 다시 2년간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4년 출옥후 재건된 중아유치원 사범과 교사로 있었으며 1928년 이 사범과가 [중앙보육학교]로 정식인가를 받으면서 초대 교장으로 취임하여 1932년 임영신에게 자리를 넘겨주기까지 교육사업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이와같은 화려한 독립운동,교육사업에서의 업적에도 일제말기인 1939년 친일계잡지 <동양지광>의 주간이 되면서부터 행한 그의 칠일적 행위로 그는 8.15 해방 후 [반민족주의자]로 몰려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6.25사변 중인 1951년 9월 21일 별세하였다.

 

 

>> 목차고리 : 민족대표 33인

 



   


A-Z




  인기검색어
kcm  323290
설교  166502
교회  120463
아시아  95840
선교  92084
세계  81994
예수  79592
선교회  70054
사랑  66400
바울  65957


[배너등록]
 

 


홈페이지 | 메일 | 디렉토리페이지 | 인기검색어 | 추천사이트 | 인기사이트 | KCM 위젯모음 | 등록 및 조회

KCM 찾아오시는 길 M1000선교사홈 미션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