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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6-12-26
 제목  김정복(1882~1950) 목사
 주제어  [한국인 목사, 순교자] 종지리교회 길두교회 소록도교회
 자료출처  목양신문  성경본문  
 내용

장로교 목사 순교자

 

1. 성장,목사안수 받음

충남 서천군 한산면 종지리에서 출생,충남지방의 초대교회인 종지리교회에 출석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1916년 전라노회 추천으로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 하였다. 입학한지 8년만인 1924년에 신학교를 졸업(17회)하고 전남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후, 곧 제주도에 있는 성내교회를 담임하면서 교회가 경영하는 영흥학교와 삼양리교회도 경영한 영신학교에 성경교사로도 봉사하였다.

1926년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모인 제15회 총회에 전남노회 이수현.김응규.김영식목사와 함께 총대로 참석하였다.
1928년 제주 성내교회를 사임하고 순천노회소속 벌교읍교회를 담임하였다. 노회 서기를 거쳐 1930년 순천노회장도 역임하는 한편 고흥읍교회와 길두교회를 담임하면서 길두사숙을 경영하였다.

2. 소록도교회에서 나환자 목회에 일생을 바치다.

한동교회를 거쳐서 소록도에 있는 나환자를 위한 소록도교회 목회에도 힘을 기울였다. 이때 순천노회에서는 중견목사들과 장로들이 신사참배문제로 대수난을 당했는데, 김목사도 1940년 예비검속에 이어 41년 광주형무소로 이감되었으며, 43년 8월 실형이 선고되었다.

3년 6개월의 형을 받고 감옥생활을 하다가 해방을 맞이하여 다시 나환자가 모여 있는 소록도교회에서 나환자를 대상으로 목회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그후 6.25사변이 발발했다. 나환자들은 김목사에게 "목사님은 살아야 합니다. 피난을 가셔야 합니다"라고 애원했지만 끝까지 교회와 나환자 성도들을 지키고 돌보기 위해서 피난을 포기했다.

전세가 기울어짐을 느낀 공산군은 김목사를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김목사는 결국 체포되어 고흥내무소에 감금되었다가 공산군이 후티하던 9월 28일 애국청년 30여명과 함께 고흥읍 뒷산에서 공산군의 총에 맞아 순교하였다.

1980년 5월 20일 소록도에서 김정복 목사 순교비 제막식을 가졌으며, 순교비 뒷면에 "숨은 성자 김정복 목사님을 추모하면서, 헌신하여 36년 버림받은 나환 양떼 가슴에 안고 기도로 호흡하며 성경으로 양식을 삼고 전도로 세월을 보내시다. 남은 사명 양들에게 맡겨 두시고 선한 목자 주님가신 그 길을 따라 순교로 개선하신 선한 목자여..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쓰시고 주님이 재림하는 기약의 날까지 여기에 평안히 안식하소서. 1980년 5월20일 이명길 씀. 기독교십자성선교회"라고 기록되어 있다.

1978년 기독교십자성선교회(대표 천대성 목사)에서는 김정복 목사의 일대기를 내용으로 하는 영화(사랑의 뿌리)를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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