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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6-12-23
 제목  이태석(李泰錫, 1901. 7. ?~1950. ?) 목사
 주제어  [한국인 목사] [대한민국] [성결교] [목사] [순교자]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교회 폐쇄에 저항하다 한국전쟁때 순교

1901년 7월 평남 평양에서 출생했으며, 숭실전문과 서울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3·1운동에 관하여 일제의 감시를 받았으며 해방 후 평양 신양리 교회를 목회하고 있을 때 교회를 폐쇄하는데 항의하여 1950년 공산당에게 끌려가 평촌에서 총살되었다.

 

경신중학교 숭실학교
오사카 명교중학 졸업
도쿄 중앙대학 예과를 거쳐 상과를 졸업
경성성서학원(현서울신학대학)졸업
금산성결교회 초대교역자 3년간 시무
상수리교회. 신암교회 등 여러교회 목회
황해도 태탄사립학교에서 훈도

 

1. 신학공부를 하고 성결교단 목회자로 활동

이태석목사는 1901년 평양에서 이씨 가문의 귀한 아들로 태어났다.그는 어려서부터 향리 서당의 훈장밑에서 한학을 공부했으며 비교적 신학문을 일찍 접하여 보통학교와 중학과정을 거쳐 많은 기독교적 인재를 양성배출한 명문사학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했다.이어 그는 더 큰 학문적 희망을 품고 일본을 유학하여 대학과정을 마쳤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다시 목회에 뜻을 두고 서울로 상경하여 현재의 서울 신학대학의 전신이었던 당시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하여 신학수업을 마치고 그의 나이 32살되던 해인 1932년 졸업을 했다.

한편 이때가 성결교의 조직기로서 1929년 제1회 연회를 경성성서학원 대강당에서 개최하고 교회헌법을 발표하고 조직상으로 정식교단발족을 하게 되었다. 한국인으로 이명직, 이명헌, 최석모 목사와 미국인 길보른, 우스 등이 본부이사로 선임되어 이사회를 조직하고 감독직무를 대행했다. 그후 1933년 4월 제1회 총회를 개최하여 박현명 목사를 총회장으로 선출함으로 교단의 조직이 완전히 정비되었다.

그는 이런 성결교 태동기에 신학을 했으며 졸업을 하게 된 것이다. 1961년 그는 신학교를 졸업반으로 성결교 전도사로서 충청남도 금산교회에 목회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졸업한 다음해인 1933년 같은 고장 충남 강경읍의 강경교회에서 목회를 하다가 1936년에는 전북지방으로 임지를 옮겨 군산교회를 부임하여 목회에 전심전력을 다했다.

2. 교단분열로 하나님의 교회로 이적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1936년 11월 교단분쟁이 일어났다. 그 분쟁의 요인은 지역간의 분쟁과 소장파와 노장파간의 대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서 끝내 소장파의 다수의 목사들이 성결교단을 탈퇴하게 되었다.

한편 탈퇴한 목사들은 송태용 목사가 1935년 일본 유학중에 일본인 종교가 타니구찌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교회란 새 종파를 소개받게 되었고 여기서 목사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어 1936년에 귀국하였다. 귀국후 그는 성결교 교단지 "활천"의 편집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성결교회에 소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다. 그러나 그가 도입한 하나님의 교회가 정식교단으로 출범하기까지는 아직 열세에 있었다.그러던 차에 1936년 교단의 분열을 탈퇴한 목회자들이 이에 가입하여 하나님의 교회가 정식을 출범하게 되었다.

이태석 목사는 어디에 참여할 것인가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평양 상수리교회 소속으로 새로 창설된 하나님의 교회에 참여하기로 결심하고 이곳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3. 교회폐쇄에 저항하다 순교

한편 평양 상수리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변남성 목사가 39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이태석목사는 이를 교인과 더불어 애통해 하며 변목사의 뒤를 이어 상수리교회를 열심을 다해 섬겼다.여기서 그는 감격의 8.15을 맞았다. 그러다가 1950년 시내에 있는 산양리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을 때 6.25가 발발하게 되었다.

한편 이태석목사는 일찌기 학생이긴 했지만 3.1운동 때에 선두에 서서 만세를 부르며 주도하기도 해서 일제의 감시를 받았으며 해방이후에도 공산정권에 끝까지 불법적 처사에 맞서서 항거하는 일을 계속해왔다.

공산치하에서 많은 교계지도자들이 공산당에게 붙잡혀 갔으나 이목사는 용케도 피할 수 있었으나 사변직후 공산군은 전시체제 하에서 당분간 교회폐교가 불가피하다고 하며 협조하라고 일방적 통고를 하기에 이른다. 이에 이태석목사는 끝내 이를 거부하다 공산군에게 끌려가 평촌리 야구경기장에서 총살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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