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6월 11일 전북 김제군에서 출생했으며, 1937년 기독교를 받아들여 1940년에는 집사로 안수 받았으며, 그 후 금형교회를 설립하였다. 6·25때 교회를 떠나지 않고 지키다가 1950년 7월 12일 공산군에게 연행되었으며, 고문 끝에 생매장되었다.
한학.한의학 독학. 일어 영어 능통 한의학 권위자 전주성경학교 졸업 김제 남산교회. 금평교회 설립 1940년 10월 7일 난산교회 집사 안수 1945년 금평교회 설립
1898년 6월 11일 전북 김제군에서 출생했으며 예수 잘 믿는 서금순씨와 결혼함으로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는 동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성경책을 불살우고 아내는 무수히 맞았고 죽을 고비도 넘기기도 했지만 아내 서금순씨의 간절한 기도가 결실을 거두게 되었고 1937년 예수를 구주로 영접 1940년 10월 7일에 집사안수를 받았다. 독학으로 한학과 한의학을 연구하여 한약 방면에 권위자가 되었고 일본어 영어에도 능통하였다.
성경 전서를 100독하였고 성경책 위에 다른 물건을 놓거나 넘어갔다간 불호령이 나기도 하였다. 1946년에 금평교회를 설립하고 목회자가 없어서 강단을 지켰다. 1950년 6.25가 발발하여 교회를 돌보다가 공산당들에게 검속되어 많은 철사줄에 묶여 많은 고문을 당했고 예수를 안믿겠다고 서약하고 공산당에 협력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지만 끝내 예수를 죽어도 믿겠다고 하여 무차별 매를 맞고 아직 숨이 넘어가기도 전에 생매장당하여 김제시 용지면 용수리 산에서 1950년 7월 12일 52세로 순교하였다.
유족으로는 장남 김갑진 목사가 1969년에 총신을 졸업하고 전도사와 목사로 40년을 목회하였고 개척교회 3곳(경기도 통제교회 김제노회 상정교회 이리노회 신일교회)을 세우고 신일교회에서 20년간 시무하다가 원로목사로 은퇴하였다. 유품으로는 성경책이 순교자 기념관에 기증되어 있다. 장남 김갑진목사 장녀 김전득 권사 차녀 김운주 집사 차남 김갑성 집사 삼남 김갑수 장로 등이 부친의 순교정신을 받들어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 목차고리 : 세계 > 아시아 > 동아시아 > 대한민국 > 순교자
>> 연결고리 : 대한민국, 한국전쟁, 집사, 순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