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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9월 미국 감리교 한국선교부가 선교사의 주도로 한국인 목회자 양성을 위한 목적으로 한국 학생들에게 신학교육을 실시한 것을 연원으로 보고있다. 설립자는 헨리 아펜젤러이고, 교훈은 경건·학문·실천이다.
1893년 8월 31일부터 9월 8일까지 개최된 미감리회 한국선교회 제9차 연회에서 아펜젤러가 배재학당 학교장과 신학부의 부장으로 겸임 발령되다. 이때 신학반의 학생은 3-5명, 교수는 아펜젤러, 정규과목은 창세기와 로마서 및 [미이미교회 강례]이며, 4년 과정의 '본처 전도사' 교육과정을 확정하였다.
1918년 12월 12일 제6회 졸업식이 '신학교 교사(캠블 기념관)'에서 있을 예정이었으나 그날 아침 캠블 기념관(본관)이 전소되어, 도서실의 장서와 교구가 전부 소실되었다. 그 후 학교에서는 서둘러 2만4천달러(한화4만8천원)를 준비한후 1920년에 기공하여 1921년에 준공하였다.
1931년 협성여자신학교와 통합하여 감리교신학교로 개칭하였다가, 1950년 대학령에 따라 학제를 4년제로 개편하고 1959년 2월 26일 정규 대학인 감리교신학대학으로 인가받았고, 같은해 3월 21일 초대학장에 홍현설 박사가 취임했다. 1960년 교육특례법에 따라서 다시 감리교신학교로 개칭하였으나, 1964년 1월 21일 교육부로부터 감리교신학대학(4년제)으로 인가를 받았다. 1993년 교명을 감리교신학대학교로 변경하였다.
일제 시대의 감리교 신학교 첫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1941년 6월 3일 개교할 당시 감리교 신학교 2년에 편입한 학생들이 43년 봄에 졸업했다. 졸업생은 박설봉, 전기완, 장시화, 유산성, 권윤주, 김오봉 6명이었는데 그중에 감독으로써 협성신학교 설립과 총장을 지낸 박설봉 목사와 대전신학교(현 목원대학교)교수를 지낸 전기완 목사가 있다.
1946년 3월에 졸업할 학생들이 1945년 8월 해방 관계로 가을학기에 수업을 받지 못했다가 1946년 3월에 모여 6월까지 마지막 학기를 공부하고 졸업했다. 수업은 주로 일본시대에 받았고, 졸업장은 1946년 6월 25일 해방 후에 받았다. 이 때 졸업생한 학생은 서병주, 기효봉, 박장원, 한두원, 김진철, 김양환 등이다.
2003년 현재 3개 대학원, 신학과·기독교교육학과·종교철학과의 3개 학과로 구성되어 있다. 부설 연구기관으로 감리교신학대학 성서학연구소, 목회임상연구소, 기독교교육연구소, 한국토착화신학연구소, 현대기독교윤리문제연구소, 존 웨슬리신학연구소, 성서와 문화연구소,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 감리교선교학연구소 등이 있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냉천동 31번지에 있다. 이 장소는 1910년 4월 미국 남북감리교회 한국선교부에서 협성 신학교 부지로 구입하여 사용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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