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학의 본주문과 “새야 새야 파랑새야”와 요한복음 3장16절과 “예수 사랑하심”을 내용적으로 비교 해 보라. 종교행위는 신념체계에 따라 그 방법이 달라진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은총을 믿는 신앙에 치중하는 종교행위로 나타났으며, 동양 종교들은 사람의 의식적인 노력을 통하여 어떤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인생의 의미를 밝혀내고 삶의 길을 찾아내려는 수행에 치중하는 종교행위로 나타난다. 여기서는 동학의 본주문과 동학교도들이 자신들의 이념과 사상을 노래로 만들어 보급한 “새야 새야 파랑새야”와 기독교의 요한복음3장 16절과 “예수 사랑하심”을 각각 정리하고, 비교해 보고자 한다. 1. 동학 동학의 종교행위는 수행과 신앙을 겸한 방법을 택하고 있다. 동학의 수행법은 성주문 읽기와 호흡조절 방법이 전부이다. 동학의 성주문은 한울님을 위하는 글로서 한울님의 덕과 마음과 하나 되게 하려는 글로써 기운을 맑고 바르게 하는 수행법과 천인합일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여 바른 길을 깨닫고 바르게 사는 사람이 되도록 자신을 단련시키는 수행법이 있다. 1) 본주문 “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는 나의 덕과 마음을 한울님의 덕과 마음으로 하나되게 하며 평생에 걸쳐 바른 길을 찾아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다짐의 글이다. 시천주(侍天主)는 “내 몸안에 모시고 있는 한울님”을 말하고, 조화(造化)는 “무위이화(無爲而化)라 하여 어떤 노력을 기울이면 스스로 그러하게 된다”는 말이며, 정(定)은 “합기덕 정기심(合其德 定期心)이라 하여 한울님의 덕과 합일시키고 한울님의 마음으로 내 마음을 정하겠다는 뜻이다. 영세불망(永世不忘)은 “평생토록 늘 잊지 않고 간직하겠다”는 뜻이며, 만사지(萬事知)는 “모든 일에 임할 때 지기도이수기자(知其道而受其知) 하겠다”는 뜻으로 “ 그 도를 알고 그 앎을 받겠다” 는 말이다. 이 주문은 나를 천인합일의 차원으로 끌어올리자는 것이요, 평생토록 바른 길이 무엇인가를 추구하겠다는 글이다. 지금 이 세계에 살고 있으며 다음 순간을 살아가려고 의욕한다. 되는대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뜻있고 보람있고 바르게 살아 갈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보람있고 바른 삶인가를 평생토록 물으며 살아가야 한다. 바로 영세불망 만사지를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2)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출고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논에 앉지 마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밭에 않지 마라. 아래 역 새는 아래로 가고 윗 녁 새는 위로 가고 우리 논에 앉지마라 우리 밭에 앉지마라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손톱 발톱 다 닳는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밭에 앉지마라 위여 ~ 위여~ 위여~ 위여~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논에 앉지마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전주고부 녹두새야 윗논에는 차나락 심고 아랫논에 메나락 심어, 울 올래비 장가갈 때 찰떡치고 메떡칠때 네가 왜 다 까먹느냐 네가 왜다 까먹느냐 위여~ 위여 ~위여 ~ 위여~ 위여 ~ 위여 ~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논에 앉지 마라. (1)동학농민운동과 관계가 깊은 내용으로써 녹두꽃은 녹두장군 전봉준을, 청포장수는 민중을 의미한다고 보는 설이 일반적이다. (2)파랑새를 청나라 군사라고 보는 경우 : 청나라 군사들아 청나라 군사들아 동학농민들은 죽이지 마라. 동학농민들이 죽으면 전봉준 장군이 슬퍼한다. 청나라 군사들아 청나라 군사들아 동학농민들은 죽이지 마라. 전봉준 장군이 죽으면 동학농민들이 슬퍼한다. 라는 뜻을 담고 있다.
2. 기독교 1) 요한복음 3장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되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를 인간을 죄악 가운데 구원하시기 위하여 속죄 제물로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셨다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를 속죄 제물로 인간에게 내어주신 이유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단순히 신체적 죽음을 의미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하고 영원한 정죄로 하나님과 영원히 단절됨을 의미한다. 그러한 멸망을 당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인데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는 말이다.
2)예수사랑 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죄를 다 씻어 하늘 문을 여시고 들어가게 하시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 세상사는 동안에 나와 함께 하시고 세상 떠나 가는 날 천국가게 하시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완전함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강함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악 됨을 인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의 연약함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게 했다는 말이다. 그 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할 때에라도 우리를 더욱 더 사랑하시며, 우리가 죄악 가운데 있을 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씻어주시는 분이라는 말이다. 독생자 예수를 속죄 제물로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실 뿐 아니라 내가 이 땅에 사는 날 동안도 함께 하시고, 세상을 떠나 갈 때에도 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3. 동학의 본주문과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요한복음3장16절과 “예수 사랑하심”의 비교 이상에서 동학의 본주문과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그리고 기독교의 요한복음 3장16절과 “예수사랑하심”을 각각 살펴보았다. 동학의 본주문은 “내 몸에 모신 한울님의 덕과 합하고 한울님의 마음으로 정하려는 다짐이요, 평생토록 만사에 도를 알고 그 앎을 받아들여 살겠다는 다짐”의 글로써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을 수행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노력 곧 수행을 통해 한울님의 덕과 합하고자 하며 바르게 사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과 수고, 기대가 좌절되었을 때 소망이 없는 한을 남겨 놓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는 바로 동학교도들의 현실 앞에 쓰러질 수 밖에 없는 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면서 슬픔을 노래하며, 저들의 가슴에 “한”을 심는 노래를 담아낸 듯 하다. 그러나 요한복음3장16절의 말씀은 인간의 노력과 수고로 사람이 멸망의 길에서 영생을 얻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 곧 독생자를 보내신 사랑으로 인하여 인간이 영생을 얻으며, 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수고와 노력으로 인해 얻어지는 바른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이기에 바른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사랑 하심”과 같이 비록 연약하여도, 죄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하심 때문에 소망을 바라 볼 수 있으며, 한이 아닌 기쁨으로 남을 수 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