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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kcmseoul  작성일  2008-04-11
 자료구분  주제어  주제어  기도하는 요나
 내용

성경:요나2: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우리가 어려움 가운데 놓여져 있다는 사실은 주 하나님의 도우심을 크게 입을 은혜의 자리요, 기회임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약함은 곧 주님의 권능을 체험할 역사의 출발입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통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온전히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함을 배우고 오히려 역경을 은총의 기회로 삼습니다. 안일한 생활을 추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바램이지만 그 안일함이 순수한 신앙을 서서히 목조르기 십상입니다. 반면에 고통으로 뒤범벅된 역경은 사정없이 우리의 신앙을 자극하여 줍니다. 문제는 거기에 반응하는 우리의 영적 자세입니다

1. 요나의 선 자리-"물고기 뱃속에서"
  물고기 뱃속, 비록 불순종한 요나가 징계 받는 자리이지만 참담한 곳입니다. 정말 극적으로 목숨 부지할 수 있었던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 쓸어 내릴 여유가 없습니다. 칠흙같은 어두움과 질식할 듯한 갑갑함이 온 몸을 감싸고 있습니다. 요나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스올의 뱃속'(욘2:2)이라고 비유하였습니다. 절망과 죽음의 실체가 있는 무덤 같다는 고백입니다. 살아 있어도 산 것 같지 않다는 고백입니다. 스올의 뱃속은 가장 비참한 고통이 주인으로 군림하고 있는 곳입니다. 저주 중의 저주는 '지옥에나 떨어져라'라는 심판입니다. 요나는 성도가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징계가 얼마나 무서우며 요나의 불순종이 얼마나 컸던가를 잘 보여줍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완악함과 불순종에 대하여 처절하리 만큼 비참한 지경으로 몰아 넣을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2. 요나의 영적 자세-"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 모두는 완전할 수 없기에 실족할 때가 있습니다. 징계는 우리가 하나님의 참 자녀인 것을 증명해 줍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사랑의 회초리입니다. 요나는 자신의 생애에 가장 처절한 고통의 징계를 받았지만 거기에 발목 잡혀 시험 들지 않고 다시금 일어섰습니다. 무릎으로 긍휼의 주님께 다가갔습니다. 징계 가운데서 부르짖은 요나의 기도는 분명히 통회의 눈물로 가득 채워져 있었을 것입니다. 징계의 회초리로 맞아 시퍼렇게 멍든 자국을 보고 원망의 눈초리로 하나님을 째려보지 않고, 너무 심하다 싶어 자기 연민에 빠져들지도 않고, 한번 더 절박한 심정으로 긍휼의 주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주저함 없이 진정 회개의 무릎을 꿇었습니다. 성난 폭풍우에 아우성치는 갑판 위, 그 자리에서는 가슴을 치며 회개할 기회를 갖지 못하였지만, 이제 고독의 심연 속에 갇혀 오직 주 하나님만 바라보며 단장(斷腸)의 회개를 그의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쏟아 부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잠시 잃어 버렸던 기도를 뜨겁게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때론 우리가 당한 현실의 고통이 너무도 크기에 거기에 압도당한 나머지 할 말을 잊고 망연자실할 수도 있습니다. 기도할 기력조차 상실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와 성정이 같은 요나도 절망의 가장 깊은 곳으로 떨어졌지만 그 자리에서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의 무릎을 꿇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어떤 것입니까? 징계의 회초리 아니면 주님 때문에 받는 고난, 그 어떤 것이든지 간에 기도의 줄은 결코 놓아 버려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 바로 기도의 자리입니다.
  


성경:요나2:2           "여전히 주 하나님은"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끊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겪는 고통중의 하나가 주님께 범죄한 뒤에 찾아오는 단절감입니다. 즉 주 하나님께 범죄하였으니 무슨 낯으로 주님께 나아가리요! 그러한 죄책감에 시달린 나머지 주님의 은혜에서 멀리 멀리 떨러진 듯한 영적 단절감이 무겁게 우리네 영혼을 짓누릅니다. 황량한 광야에 홀로 나부라진 자신의 모습에서 더 이상 주님은 나 같은 것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정말 그럴까요?

Ⅰ.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감히 주 하나님의 명령을 거슬려 제멋대로 행하다가 호되게 혼난 징계의 자리이기에 어찌 다시 주의 음성을 들으리요. 지레 속단하고 있었는데 주 하나님은 요나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래도 주님밖에 없다는 절박함을 안고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주의 이름을 불렀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요나의 소리에 대답하십니다. 깊은 바다속 칠흙같은 물고기 뱃속에서 신음하듯 토해내는 요나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십니다. 범죄한 요나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을 떠나 멀찌감치 머물러 계시고 또한 자신으로부터 등을 돌렸을 것이라는 생각을 영 떨쳐 버리지 못해 고통이 가중되고 있었는데, 이 어찌된 일인가? 여전히 주 하나님은 내 가까이에 계시지 않으신가! 주님은 징계의 매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요나의 곁에서 그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매맞아 상처 난 자리를 싸매어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Ⅱ.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때때로 등돌리고 떠나는 쪽은 강퍅한 우리들 자신이지 결코 주 하나님은 아닙니다. 죄악의 담이 우리와 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는다 할지라도 결코 그 죄악이 영원히 끊어 놓지는 못합니다. 문제는 스스로 단절의 담을 쌓아 올리며 죄책감에 파묻혀 절망의 늪을 빠져 나오지 못하는 우리들 자신입니다. 또한 문제는 진정 통회 자복하는 심령을 회복하지 않고 계속 강퍅함에 떨어지려고 하는 우리들 자신입니다. 여전히 주 하나님은 요나의 주님, 그리고 나의 주님으로 계십니다. 요나는 주님의 손을 놓았지만 하나님은 요나의 손을 꼭 붙들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요나가 손을 펴서 주님을 붙잡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요나의 기도의 통로는 계속 열려 있었습니다. 분명히 죄는 기도응답의 거침돌이 됩니다(이사야59:1-3). 하지만 기도응답을 파괴시켜 복구 불능의 상태에 이르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것을 온몸으로 보여 준 요나의 체험적인 신앙고백이 바로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입니다.

  혹시 도무지 주님의 은혜를 바라볼 수 없다는 고통스러운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까? 이러한 지경에 떨어진 내 자신을 보노라면 더 이상 주님은 나를 돕지 않을 것이라는 비참한 생각이 듭니까? 주 하나님이 이제는 나의 음성이 도달할 수 없는 곳으로 멀리 떠나셨고, 이제는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리셨다고 여겨집니까? 하나님은 결코 우리 곁에서 한발자국이라도 옮겨 놓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고 우리의 내민 손을 더욱 굳게 잡아 주시기를 진정 기뻐하십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있지 않고 우리들 자신에게 있습니다.


성경:요나2:4              "다시!(Again)"

  실패의 자리를 딛고 다시 시작하려면 큰 용기와 결단이 요구됩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영적인 신앙생활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신앙은 늘 탄탄대로인 고속도로만을 기분좋게 질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영적 주행을 가로막는 갖가지 험로가 산재합니다. 타이어가 구멍 나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포기해야 할까요? 고생스럽지만 새 타이어로 갈아 끼운 뒤 다시 진행해야 합니다.

Ⅰ. 쫓겨난 요나-"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죄악을 심판하십니다. 어물쩍거린다고 슬쩍 눈감아 주시지 않습니다. 죄는 매로 다스립니다. 예외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불신자냐 아니면 성도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영원한 형벌의 의미를 담은 심판의 매는 불신자의 몫이요 반면에 성도에게 있어서의 매는 일벌백계(一罰百戒)의 징계의 성격을 띱니다. 불순종한 요나를 하나님은 징계의 매로 혹독하게 다루셨습니다. 죽음의 문턱에 까지 그를 밀어내었습니다. 요나는 이러한 끔찍한 느낌을 주의 목전에서 쫓겨 났다고 털어놓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난 요나, 참으로 가련한 인생입니다.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인생의 가장 고통스러운 절망의 경험은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쫓겨 났다고 여겨지는 순간입니다.

Ⅱ. 그러나 다시 시작하는 요나-"내가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쫓겨남은 '다시는 꼴도 보기 싫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도 요나는 다시 주 하나님을 찾습니다.설사 하나님께서 꼴도 보기 싫은 녀석 나가라 하셨을지라도 끝까지 버팁니다. 등떼밀어 문밖에 놓고 대문 걸어 잠갔을지라도 두 주먹으로 꽝꽝 대문 두드립니다. 이는 주님 밖에는 없다라는 절대적인 믿음이요(시편16:2),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주님이신 것을(하박국3:2) 알고 있는 신앙입니다. 그러기에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시작합니다. 다시 엎드립니다. 다시 찾습니다. 다시 손들고 옵니다. 다시 은혜를 구합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섭니다. '다시'(Again), 히브리어로 '야사프'(   )인데 계속 반복되어 지는 것을 말합니다. 결코 주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라는 진리를 단단히 부여잡고 그저 주님께 매달립니다. 쫓겨나도 다시금 돌아가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집니다. "저는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어요!"

  다시 시도하는 것 정말 힘이 듭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사는 길입니다. 신앙, 그것은 '다시'라는 단어를 빠뜨려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칠전팔기(七顚八起)는 세상사람을 두고 한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앙인의 여정입니다(잠언24:16). 환난의 폭풍우에 쓰라린 실패를 맛보았더라도 거기서 털썩 주저 앉아 버려서는 안됩니다. 징계의 채칙으로 차마 얼굴 들 용기가 나지 않더라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긍휼로 따스하게 감싸 주시는 은혜의 주님을 다시 바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다시'(Again)의 은총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성경:요나2:7            영적 침체로부터 탈출

  때때로 우리네 삶이 얽힌 실타래처럼 혼란스러워지거나 나사 풀린 기계 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삐거덕거릴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 가운데서도 이 같은 증상이 나타나곤 합니다. 가슴을 치며 들어오던 찬송도 더 이상 은혜스럽지 않고 영적 갈망에 부르짖던 기도도 공허한 메아리로 귓전을 피곤하게 때리고 또한 예배하러 가는 발걸음도 여간 무거운 게 아닙니다. 사람은 영적이기에 영적 곤고함으로 말미암은 영적 침체는 정말 고통스러운 시기입니다. 혹시 영적 침체의 수렁으로 무기력하게 빠져들어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Ⅰ.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요나의 영적 침체 경험은 하나님을 불순종함으로 나타납니다. 징계의 매에 되게 혼쭐남으로 겪는 영적 곤고함입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친밀감 상실, 무겁게 짓누르는 죄책감, 바깥으로부터 철저하게 단절된 칠흙같은 물고기 뱃속에서의 외로운 심정 등이 은혜로부터 떨어져 있는 듯한 비참한 자기 자신과 서로 맞물려 더욱 힘들어 집니다. 밀물처럼 전에 그토록 넘쳤던 은혜가 한순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공허한 가슴만 남아 있습니다. 영혼이 심한 갈증에 허덕거립니다. 우리를 진정 피곤하게 만드는 것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습니다. 영적 은혜의 충만함이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속사람의 강건함만이 외적 피곤한 환경을 넉넉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심령이 피곤하여 지쳐 있으면 설사 외적 환경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손치더라도 여전히 우리네 가슴은 휑하니 뻥뚤린 듯한 곤고함에 방황합니다.
  
  Ⅱ.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영적 침체로부터의 돌파구는 '주 여호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하다', 히브리어로 '자칼'(   )인데 잊지 않고 깊이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영적 침체의 늪에 빠질 때 '여호와를 생각하라'! 여기에는 중요한 교훈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바로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오직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다는 신앙입니다. 그러기에 초점을 주님께 맞춥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주 하나님을 깊이 깊이 묵상하고 매달립니다. 주님을 앙망합니다. 영적 침체는 결코 외부 요인에 있지 않고 '관계', 즉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과연 어디에서 이상기류가 생겼는가?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가? 주님과의 관계에 이상이 발생하면 그 다음 차례는 우리 자신의 영적 침체입니다. 바깥으로 눈을 돌리는 행위는 우리를 더욱 곤고하게 만듭니다. 피곤하여 쇠약해진 영혼을 붙들고 오직 주 하나님께 빠져들어 가야 합니다. 주님께 집중할수록 영적 침체의 올가미는 쉽게 벗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을 영적 침체로 떨어뜨리는 요인은 다양합니다. 하지만 그 해결 방법은 하나입니다. 오직 주 하나님, 오직 주님을 생각하며 바라보는 길입니다. 요나도 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관심을 하나님께로 쏟아 부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간증합니다.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요나2:7 하반절). 뚜렷한 영적 회복의 징조입니다.
   곤고한 날에는 하나님을 생각하라!


성경:요나2:10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요나

   지난 날의 삶을 돌아볼 때 나에게 가장 큰 위기는 어느 때 였습니까? 혹 죽음의 문턱이나 인생 파산 직전까지 떨어져 본 일은 없었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자리가 그 후 내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습니까? 찾아 온 위기는 우리에게는 또 다른 기회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기회의 가능성은 하나님 앞에서 위기를 우리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있습니다.

Ⅰ. 다시 밝은 세상으로
  삼일 삼야를 물고기 뱃속에서 지내다가 다시금 환한 세상으로 나온 요나의 심정은 어떨까요? 실날같은 빛조차 존재하지 않고,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찌르고, 지독히 습한 기운이 소름끼치게 온몸을 휘감고, 허기진 배에 기력이 쇠하고, 철저히 단절된 외로움이 뼈속 깊이 파고들고, 오죽 했으면 요나가 '스올(음부)의 뱃속'이라고 표현했겠습니까? 그런데 다시금 살아서 돌아 올 줄이야! 72시간의 생사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던 요나에게 찾아 온 이 순간은 필설로 표현하기 힘든 기분일 것입니다. 코로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이 하나 만으로도 그의 심정은 벅찬 감격에 파묻혔을 것입니다. 다시 밝은 세상, 마른 땅으로! 전적인 주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었습니다. 통회 자복하며 자비를 구하는 요나에게 하나님은 긍휼의 은혜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은혜는 겸손한 자에게 부어집니다. 인생의 쓰고 쓰라린 맛을 보며 고통가운데 어두운 터널, 혹은 황량한 광야를 지나고 있습니까? 주의 은혜만이 살 길입니다. 그렇다면 낮아지시기 바랍니다. 철저히 주님 앞에서 낮아지시기 바랍니다. 위기는 주의 은혜를 누릴 기회입니다.

Ⅱ. 다시 기회를 얻은 요나
  훗날 사람들은 요나를 기억할 때 하나님을 불순종하다가 벌받아 바다에 빠져 죽은 불행한 인생으로 자칫했으면 떠올릴 수 있었을텐데, 하나님은 요나에게 제2의 값진 인생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요나가 과거의 실패에 붙잡히지 않고 실패를 거울 삼아 하나님께 철저한 회개와 온전한 헌신을 드림으로 얻은 은혜의 기회였습니다. 회개는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한번의 실수에 우리네 삶을 깡그리 박살내지 않으십니다.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 담지 못한다'라는 속담이 세상에서는 통할지 모르지만 진노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용서의 은혜를 받을 기회를 마련해 주십니다. 사망의 덫과 같았던 물고기 뱃속에서 자유를 얻은 요나야 말로 용서가 무엇이고 은혜가 무엇인지를 체험한 인생입니다. 마른 땅에 극적으로 첫발을 내딛게 된 요나는 새삼 감동에 겨워 푸른 하늘과 하아얀 모래밭을 바라보며 다시 시작되는 자신의 삶에 대하여 더욱 진지하게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은혜로 말미암은 덤 인생, 결코 내 인생아닙니다. 오직 주의 것입니다. 이제 주님만 위하여 살리라! 이제는 주의 명령에 따라 살리라!

  기회는 자주 되풀이 되지는 않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있었고 오늘의 삶이 있었다고 확신한다면 주님 위하여 불사를 생의 기회로 선용하여야 합니다. 회개가 우리를 용서의 자리로 초대하여주고 또한 용서받은 은혜의 자리는 주님 위하여 헌신할 기회로의 문을 활짝 열어 줍니다. 주의 은혜로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요나, 바로 오늘 우리에게도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은혜의 문을 크게 열고 받아 주시고 또한 제2의, 제3의 기회를 주심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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