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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kcmseoul  작성일  2008-04-11
 자료구분  주제어  주제어  에돔의 죄
 내용

성경:오바댜1:10-14               에돔의 죄악(1)

  이제 에돔 족속이 범한 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토록 주 하나님의 진노를 산 에돔의 교만함의 실체가 밝혀집니다. 에돔이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총 망라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에돔의 죄는 형제 야곱에게 대한 사랑 결여입니다.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을 인하여 수욕을 입고 영원히 멸절되리라"(10절). 형제가 어려움을 당하면 마땅히 팔을 걷어 부치고 도와야 합니다. 그런데 에돔은 형제 사랑을 발로 차버립니다. 형제 야곱의 어려움을 지켜보면서 도리어 포학성을 보여줍니다. 어떻게요?

Ⅰ. 방관(傍觀)
  첫 번째 에돔의 죄악은 '방관'입니다.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12절 상반절). 본문의 방관하다 라는 말은 히브리어 '주의하여 보다'의 '   '(라아)라는 동사에 부정어가 붙은 경우입니다. 즉 주목하여 보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웃 형제 야곱 족속이 국가적으로 민족적으로 엄청난 환난을 당하고 있는 데도 에돔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원근 포악한 무리들이 형제 야곱을 침략하여 무자비하게 유린하고 있는 데 에돔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형제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이 휘두르는 칼날에 피를 흘리며 죽임을 당하고 있는 재산들을 탈취 당하고 있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데도 도울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습니다. 팔은 안으로 굽지 않습니까? 그런데 에돔은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처럼 바라만 봅니다. 한 핏줄인 형제가 바로 코앞에서 피를 쏟으며 땅바닥에 뒹굴고 있어도, 바로 눈앞에서 고통에 겨워 절규하듯 애타게 도움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데도 조금도 마음에 동정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도 형제 에돔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겠느냐 하는 한 가닥 남은 바램마저 무참히 짓밟아 놓습니다. 지금 형제 야곱이 지도상에서 혹은 역사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고 있는 데도 에돔은 가슴 털끝 하나 동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대단한 강심장입니다. 곁에서 혈육이 몰매를 맞아 죽어가고 있는 상황인데 말입니다. 주 하나님은 에돔의 몰인정한 이같은 모습에 불같이 진노하셨던 것입니다. 네가 같은 형제로서 그럴 수가 있단 말이냐?

  오늘 우리가 형제의 고통을 보고도 못 본 척 한다면 그 옛날 에돔하고 별 차이가 없습니다. 신앙의 한 배를 타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혹은 같은 구역 식구가 환난을 만나 신음하고 있을 때 우리가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고 짐짓 모른 체 한다면 우리 주님은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방관은 형제 사랑이 아닙니다. 관심이 형제 사랑입니다. 따뜻한 관심을 늘 형제들에게 혹은 이웃들에게 쏟는 모습이 참된 이웃 사랑입니다. 우리가 죄악의 짐을 어깨에 지고 지옥 불구덩이로 달려가고 있을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내버려두시지 않으셨습니다. 보고도 못 본체 알고도 모른 체 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셨다면 오늘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지옥 형벌을 벗어나 천국에 이를 자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비참한 처지를 보시고 마음이 움직이시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보내어 주셨고 또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죗값을 치르시도록 내어 주셨습니다. 참된 사랑은 사랑의 심정인 관심에서 출발합니다. 애써 눈을 돌려 형제의 고통을 외면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관심은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이지만 방관은 내 자신도 망하게 되는 지름길입니다.  


성경:오바댜1:10-14              에돔의 죄악(2)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악해질 수 있을까요? 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추호도 없는 자는 얼굴에 철판 이상을 깔고 악하여집니다.   

Ⅰ.즐김
  "유다 자손의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12절 중반절). 에돔의 두 번째 죄악은 형제가 망하는 모습을 보며 즐긴 일입니다. 형제 이스라엘은 피눈물을 쏟으며 죽어가고 있는 데 마땅히 도와야 할 에돔 족속은 마냥 즐거워합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처신입니다. 어찌 형제의 고통을 보며 즐길 수가 있단 말인가? 이방 민족에 의해 유린당하며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는 형제를 보며 웃을 수가 있단 말인가? 정 도와 줄 형편이 안되면 정신없이 가슴을 치며 안타까워해야 정상이 아닐까요? 이스라엘 자손들이 에돔의 원수입니까? 아니지요.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 민족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려운 이웃 형제들을 보며 잘되었고 아주 고소하다는 듯이 즐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Ⅱ.자랑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라"(12절 하반절). 본문에서 '(입을) 벌리다' 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   '(가달)인데 거만하게 자랑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이방 민족에 의해 말할 수 없는 모욕과 고난을 받고 있는 것을 본 에돔은 그 일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주변 사람들에게 힘껏 떠벌려 말합니다. 동정하거나 슬퍼하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형제의 고통이 뭐 대단한 자랑거리인양 즐거워하며 사방팔방 나팔붑니다. 참 이상한 에돔입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입니다. 행여 누가 형제 이스라엘의 패망을 즐거워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가슴에 묻고 흐느끼며 안타까워해야 하는 데도 오히려 앞장서서 형제의 고난을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데 크게 활용합니다. 형제의 고통을 빌미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고 드는 아주 악질적인 태도입니다. 이러한 에돔 족속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계시는 우리 주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하셨을까요? 에돔을 향한 진노가 용광로처럼 타오릅니다.

  우는 자로 더불어 함께 울어주고 반면에 기뻐하는 자로 더불어 즐거워하는 것이 이웃 사랑의 모습입니다. 형제의 피눈물을 보며 입가에 호탕웃음을 날리고 형제의 고난을 보며 자신을 과시할 수 있는 호기로 여기는 것은 주 하나님 앞에서 바르지 못합니다. 고아와 과부를 그리고 가난한 자를 돌보시는 우리 주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가증스러운 죄악입니다. 손을 펴서 도와 줄 형편이 안되면 마음으로나마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주님께 고통받고 형제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분명 에돔은 정상하고는 너무도 거리가 나는 비인간적 비신앙적 비양심적인 행동을 하였습니다. 결국 이러한 에돔 족속은 주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더욱 끔찍한 종말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형제의 환난을 즐기고 있는 에돔의 강퍅함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뿐더러 용서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형제의 고난과 고통에 동참하는 자세가 이웃 사랑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성경:오바댜1:10-14            에돔의 죄악(3)

  에돔의 죄악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거론하실 때 그들이 침략자들과 철저하게 한통속이 되어 형제 이스라엘을 괴롭혔다는 점을 크게 부각시킵니다. 뒷짐지고 물러서서 방관하는 것도 큰 죄악일진 대 하물며 침략자들과 하나가 되어 형제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는 데 앞장섰다면 그 죄악의 심각성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Ⅰ. 탈취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거이며"(13절 하반절). 형제 이스라엘의 재산을 힘닿는 대로 지켜 주어야 할 에돔 족속이 도리어 형제의 물건을 빼앗아 갑니다. 큰 어려움에 빠져 제대로 자기 재산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보고 얼씨구나 좋다 하는 심정으로 재산 탈취에 혈안이 되어 날뜁니다. 불난 집에 불끄러 오지 않고 오히려 혼란을 틈타 도둑질하는 자들과 같은 모습입니다. 이방 민족들의 무자비한 칼날에 쓰러져 신음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러한 비참한 상황을 목격하고도 조금도 동정심은 생기지 않고 도리어 방어 능력을 상실한 형제 이스라엘 집을 샅샅이 뒤지며 재산 빼앗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칼로 쳐서 재산을 탈취하는 이방 민족들이나 그 뒤를 따르며 악착같이 형제의 재물을 빼앗아 가는 에돔 족속이나 똑같습니다. 평생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힘 안들이고 빼앗아 간 에돔 족속입니다. 차마 형제에게 하지 못할 강도 짓을 저지른 흉악한 무리들입니다.

Ⅱ. 퇴로 차단
  "사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14절 상반절). 무자비한 이방 민족의 칼날을 가까스로 피하여 살겠다고 도망치는 형제 이스라엘의 길을 에돔은 강력하게 차단합니다. 어려움에 직면한 이스라엘을 도울 형편이 정 안되면 살육의 현장에서 도망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팔이 안으로 굽는 것 당연하잖아요. 오늘날 세계 도처에 민족간에 혹은 나라간에 피비린내 나는 분쟁이 있는 지역마다 살겠다고 이웃 나라로 도망치면 받아 주지 않습니까? 특히 같은 민족 같은 종교일 경우는 이러한 유대 관계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당시 에돔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피난처 제공은 상상도 하지 못하겠고 도리어 퇴로 차단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것도 형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더욱 끔직한 만행을 저지릅니다.

Ⅲ. 팔아 넘김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대적에게 붙이지 않을 것이니라"(14절 하반절). 아예 형제 이스라엘의 씨를 이 땅에서 없애 버리겠다고 두 팔 걷어 부치고 나선 에돔입니다. 잔인한 이방 민족의 칼날에서 구사일생 목숨을 건지고 살아 남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서 붙들어다가 이방 민족들에게 넘겨줍니다. 깨끗하게 없애 버리라는 뜻입니다.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다 죽여야 함을 보여주는 태도입니다. 소름 끼치는 잔인함입니다. 이스라엘을 침략한 이방 민족들보다 한 수 더 뜹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에돔의 죄악의 극악함과 잔인함에 말을 잃습니다. 에돔의 눈에는 이스라엘은 형제가 아니고 철천지원수입니다. 형제에 대한 동정이나 사랑은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이같은 에돔을 보시고 계신 우리 주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공의의 하나님의 진노가 화산처럼 폭발합니다.    

  어려울 때 서로 돕는 형제로서 형제는 용감했다 라는 말은 에돔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혈육의 정을 혹은 이웃 사랑의 마음을 헌신짝처럼 내버린다면 짐승만도 못한 것입니다. 형제 이스라엘에게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은 에돔 족속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고 망합니다. 이웃 사랑, 형제 사랑은 폭력이 아니고 희생적인 돌봄과 섬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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