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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kcmseoul  작성일  2008-04-11
 자료구분  주제어  주제어  베냐민과의 전쟁
 내용

성경:사사기20:1-11         이스라엘의 분개

  끔찍하게 토막낸 시신의 일부를 본 이스라엘 온 지파들은 크게 경악을 금치 못하고 곧바로 미스바로 모여듭니다(1-2절). 이어 레위인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듣습니다(3-7절).

Ⅰ. 응징을 결정한 이스라엘 지파들
  8절의 '모든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며'는 만행을 저지른 기브아에 대한 응징을 결심한 행동입니다. 만장일치로 응징을 다짐합니다. 불의에 대하여 결코 용납하지 않으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리고 몇 가지 사항을 결의합니다. 첫째, 문제 해결 전까지는 귀가 반대(8절), 둘째, 기브아와의 전쟁(9절), 셋째, 이에 소용되는 인적 물적 자원 충당(10절) 등입니다. 기브아 사람들의 범죄에 대하여 일벌백계(一罰百戒)로 엄중히 다스리겠다고 한결같이 적극적으로 나선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불의에 대하여 침묵하거나 방관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바로 잡아 주어야 합니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지적해주어야 합니다. 회개만이 살길임을 말해주어야 합니다.

Ⅱ. 간과된 사실
  온 이스라엘이 기브아 불량배들의 끔찍한 음행에 대하여 이토록 분노하고 단호한 징계를 결정하였는데 한가지 안타까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영적 음행에 대한 성찰과 회개가 따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공개된 육적 음행에 대하여는 벌떼처럼 달려들었지만 정작 자신들 가운데 은밀하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영적 음행에 대하여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 점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주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주님을 형상화된 신상들로 바꾸어 섬기는 가증스러운 우상숭배에 대하여 그들은 일언반구하지 않습니다. 사사기17-18장에 나타난 영적 간음에 대하여는 누구하나 나서서 징계를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훗날 사사 사무엘 때에 이르러서야 영적 음행에 대한 민족적인 참회가 일어납니다(사무엘상7장) 마는 그때까지는 침묵하고 덮어두고 지납니다. 이는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스바에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육적 음행에 대한 징계만 논하였지 정작 선행되어야 할 영적 음행에 대한 회개는 없었습니다. 기브아 거민들의 집단 강간과 살인에 대하여는 '망령된 행위'(10절)라고 비난하며 정죄하였지만 자신들의 영적 간음에 대하여는 목소리를 숨겼습니다. 강간과 살인을 저지른 자들을 내 손으로 목을 치리라 분개하며 치를 떨었지만 정작 자신들의 하나님 앞에서의 추악하고 가증한 우상 숭배에 대하여서는 목소리를 낮추었습니다.

  입에 담기가 거북한 윤간과 살인 행위에 대하여 이스라엘이 침묵하지 않고 징계를 결정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하지만 영 개운하지 않습니다. 왜요? 우리는 두 눈으로 이스라엘의 영적 간음을 목격하였기 때문입니다. 누가 누구를 정죄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주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하실까요? 이스라엘의 가증스러운 우상 숭배를 보고 크게 탄식하며 분노하실 주님이십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공의의 하나님께서 침묵하실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정확합니다. 형제의 눈 속에 티를 보기 전에 내게 있을지 모르는 들보를 살펴보고 빼어야 합니다. 기브아 거민에 대한 온 이스라엘의 분노는 어쩌면 명분에 충실하려고 하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즉 공개된 범죄는 용서할 수 없지만 은밀하게 자행되는 윤리적 그리고 영적 탈선에 대하여는 눈감아 주겠다는 태도입니다. 이스라엘의 분개는 정당한가? 한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본문입니다.   


성경:사사기20:12-16         베냐민 지파의 만용(蠻勇)

  '만용'은 앞 뒤 가리지 않고 함부로 날뛰는 용맹을 의미합니다. 올바른 목적을 위해 힘을 써야 참된 용기입니다. 정의를 거슬려 행동하는 용기는 만용입니다. 만용을 부려서는 안됩니다. 만용을 부리다가 헛되이 목숨을 잃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주먹은 아무 때나 휘두르는 게 아닙니다. 의를 위해 용기를 내어 싸우고 목숨을 버리는 경우는 참으로 고귀합니다. 만용이나 객기를 부리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냉정하게 닥친 상황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Ⅰ. 확전(擴戰)을 원치 않는 이스라엘 지파들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은 무모한 확전을 원치 않았기에 베냐민 지파에 협조 공문을 보냅니다(12-13절). 그리고 범죄 당사자인 기브아 불량배들을 결박하여 인도해주기를 엄중히 요청합니다.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피고 레위인의 증언 내용을 자세히 들은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늘을 찌를 듯이 흥분을 하였지만 이내 냉정을 찾아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는 것을 막고자 신중하게 처신을 합니다. 원칙에 충실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만 처벌해야지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들까지 다치게 해서는 안되지요. 그러기에 이스라엘 지파들은 즉각 많은 군사들을 보내어 기브아 성읍을 급습하여 복수하려고 하지 않았고 기브아를 관장하고 있는 베냐민 지파의 지도자들에게 우선 사신을 보내어 공정한 사건 처리를 위한 협조를 구합니다. 일을 처리하는 데는 순서와 원칙이 있습니다. 감정에 휩싸여 문제를 처리하려다간 더 큰 오해와 문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지파들의 사건처리 방법을 정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Ⅱ. 만용을 부리는 베냐민 지파
  미스바로부터 온 협조 공문을 받은 베냐민 지파는 즉각 강한 반발을 보입니다. "베냐민 자손이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13절 하반절). 의외의 반응을 보인 베냐민 지파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기브아 불량배들의 범죄 행위를 감싸 안으려고 듭니다. 그리하여 기브아 거민들을 보호하기 이해 서둘러 기브아로 무장한 채 모여듭니다(14절). 팔이 안으로 굽는다 라는 말처럼 베냐민 지파는 정도나 원칙을 따라 행동하지 않고 단지 기브아가 자기네 지파에 속한다 라는 이유를 따라 도우려고 나섭니다. 만행을 저지른 기브아의 불량배들은 마땅히 처벌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는 단지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같은 지파 같은 형제라는 사실 때문에 그들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이는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인정에 이끌려 행동하였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부질없는 만용을 부리는 베냐민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는 강퍅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바른 양심을 가졌더라면 당연히 이스라엘 지파들의 결정을 따르고 아무리 같은 지파라 할지라도 기브아의 불량배들을 체포하여 처벌을 받도록 공회(公會) 앞에 내주어야 합니다. 죄를 죄로 보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중병에 걸렸다는 증거입니다. 정이나 이해에 얽매어 죄를 죄라고 선언하지 않고 감싸려고 하는 것은 주님 앞에서 양심 불량입니다. 진정한 용기는 악을 제하는 일에 앞장서는 것입니다. 곪아터진 상처를 도려내는 아픔도 기꺼이 감수해야 합니다.

  범죄한 기브아를 감싸려고 만용을 부리는 베냐민 지파들로 인해 사태는 더욱 커집니다. 일대 격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정도를 벗어나지 않고 원칙에 충실하였으면 쉽게 해결 될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됩니다. 만용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합니다. 만용을 부리고 있는 베냐민 지파가 과연 주 하나님께 변명할 명분이 있을까요? 있다면 정당한가요? 헛된 명분을 위해 가치 있는 양심을 버린 베냐민 사람들을 우리 주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루실까요? 계속 이어지는 말씀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사사기20:17-28                이상한 싸움

  사십만명의 대군이 집결한 이스라엘은 마침내 베냐민 지파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베냐민 지파는 비록 수적으로 열세에 있었지만 한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로 일전을 준비합니다. 한 순간의 만용으로 말미암아 민족 상잔의 비극으로 치닫습니다. 불가피한 전쟁을 치르게 된 이스라엘 지파들은 출정하기 전 엎드려 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18절 상반절). 일을 하기 전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아름다운 신앙 자세입니다. 일의 계획을 사람이 세운다 하여도 그 과정과 결과를 이끄시는 분은 오직 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응답해 주십니다. "유다가 먼저일지니라"(18절 하반절).

Ⅰ. 참패로 이어진 전쟁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이스라엘 지파들은 용기 백배하여 단숨에 기브아로 올라갑니다. 따 놓은 단상인 승리를 목전에 둔 상황이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의외의 결과가 벌어지고 맙니다.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21절).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베냐민의 예리한 칼날에 이스라엘 용사들 이만 이천명의 목이 날아갔습니다. 엄청난 참패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 받고 나서 나간 싸움인데 지고 말다니! 이스라엘 사람들도 뜻밖의 결과에 충격을 받아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 하나님 앞에서 목놓아 웁니다(23절 상반절). 그렇다고 아예 주저 않지는 않고 다시금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23절 중반절). 이에 다시 주님께서 응답해주십니다. "올라가서 치라"(23절 하반절). 첫 전투에서 참패한 이스라엘 용사들은 비장한 각오로 두 번째 전투를 위해 달려나갑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주께서 올라가서 싸우라고 하셨으니 당연히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두 번째 전투 역시 참패로 끝나고 맙니다.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일만 팔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25절).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하나님을 등에 업고 싸운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다니! 아마 이스라엘은 큰 혼란에 빠졌을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불의를 행하고 불의에 동참한 강퍅한 베냐민 지파에게 승리를 안겨 주시는 게 주님의 뜻이란 말인가? 대체 주님은 누구의 편입니까?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이 나가서 싸우라고 해놓고 연거푸 두 번씩이나 참패를 안겨 준 예가 없습니다. 아마 우리가 그 당시 이스라엘의 입장에 있었더라면 단단히 시험 들었을 것입니다. 아니 주님 이럴 수가 있어요? 언제는 나가서 싸우라고 해놓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다니요? 격앙된 어조로 원망하며 시험에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회의가 들 것입니다.

Ⅱ. 공의로우신 하나님
  주님의 지시를 따라 나간 싸움에서 사만명의 목숨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베냐민 지파 편인가?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가 예리하게 살아 움직임을 보아야 합니다. 왜 주님은 옳은 일에 목숨을 걸고 나선 이스라엘 사람들을 두 번씩이나 돕지 않았을까요? 사만명의 목숨을 빼앗아 가시려면 아예 처음부터 싸움을 말리시거나 주의 뜻을 묻는 기도에 응답을 하시지나 말던지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에 대한 징계로 보아야 이 난제가 풀어집니다. 사사기18-19장에서 보여진 가증한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불의를 행한 베냐민 지파도 징계를 받아야 하지만 그것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온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에 대한 징계입니다. 회개의 경종을 촉구하는 주님의 강한 메시지가 두 번에 걸친 참패로 나타난 사만명의 죽음을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개죽음 당한 사만명이 아닙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징계의 채찍을 들어 본보기로 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십니다. 쓸데없이 사람들을 죽이는 일을 즐기시지 않으십니다. 가증한 우상 숭배로 매를 번 이스라엘 자손들을 놔두시지 않고 베냐민 지파와의 싸움을 통해 무섭게 징계하셨습니다. 죄를 짓고는 온전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스스로 깨닫고 지은 죄에 대한 회개를 하여 살던지 아니면 징계의 채찍을 맞고 나서 뒤늦게 참회하던지 둘 중에 한가지를 택해야 살 수 있습니다. 두 번씩이나 겪은 참패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26절). 이는 이스라엘이 뒤늦게나마 자신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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