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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kcmseoul  작성일  2008-04-11
 자료구분  주제어  주제어  삼손의 죽음
 내용

성경:사사기16:23-27             원수의 조롱거리

  그리스도인은 처신을 잘해야 합니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을 가지고 방심하거나 엉뚱한 욕심을 부리면 큰 코 다칩니다. 사단은 언제나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을 쓰러뜨려 거기서 얻는 반대급부, 주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결과를 얻고자 기를 씁니다.

Ⅰ. 블레셋인들의 찬송(23-24절)
  삼손을 사로잡은 블레셋인들은 그 공을 자기들이 섬기는 다곤에게 돌립니다. 영적 방심으로 신앙을 지키지 못한 삼손은 가증한 우상을 찬송하는데 이용됩니다. 우상 다곤에게 제사를 드리며 흥겨워하는 블레셋인들을 보십시오(23-24절).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원수 마귀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참패하여 울상을 지어야 하는데 도리어 승리감에 도취하여 기뻐 날뛰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사 삼손은 자신의 부주의한 신앙으로 말미암아 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잘못하면 주님의 영광이 가려집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꼬리표가 따라 다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개인이 아닙니다. 공인(公人)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공인입니다. 잘못하면 단지 당사자 한 사람만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 아닙니다. 사단은 이것을 잘 알고 있기에 넘어진 그리스도인을 보고 기고만장하지 않고 쓰러진 그리스도인을 인하여 가려질 주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쾌재를 부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 원수 마귀와 그의 졸개들이 입을 열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원수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잘못한 삼손은 그것이 개인의 수치와 불명예로 끝나지 않고 이를 계기로 원수가 득세하여 주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Ⅱ. 원수의 조롱거리(25-27절)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조를 부리니라"(25절 중반절). 머리가 빡빡 깎이고 두 눈이 뽑혀진 삼손이 하나님 없는 블레셋인들 앞에서 온갖 재주를 부리는 광경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명령받은 대로 몸을 움직여 재주를 부리는 삼손을 보며 블레셋인들은 손뼉 치며 웃었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블레셋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장본인이 이제는 광대노릇이나 하는 존재로 전락한 삼손을 보며 얼마나 통쾌해하며 조소를 퍼부었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원수들을 쳐부수러 한창 뛰어야 할 시기에 원수들의 눈 앞에서 묘기나 부리는 자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꼴을 당하고 있는 삼손으로서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두 귀에 들려오는 블레셋인들의 웃음이 더욱 삼손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수치와 모욕이 뼛속까지 스며들지만 어찌할 수 없는 나약한 자신의 처지에 화가 났을 것입니다. 너무도 처참한 현상입니다. 원수의 조롱거리가 된 삼손의 모습에서 한번 잘못 디딛은 발걸음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안겨주는가를 보게됩니다.

  신앙의 길은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사사 삼손은 한 때 용맹을 떨치며 주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냈던 삶을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블레셋인들로부터 구원하여 민족의 영웅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에 약한 그가 한순간 자기 신앙 관리를 못함으로 그 동안 세운 업적은 감추어지고 대신 하나님 앞에 원수의 조롱거리와 주의 영광을 가리우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리에서 주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자리로 곤두박질하는 것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성경:사사기16:28               삼손의 간구
 

 본문 28절은 삼손의 마지막 간구입니다. 자신의 생사를 걸고 주님께 매달린 삼손입니다. 우리네 인생 여정 가운데 삼손처럼 생사를 걸고 간구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Ⅰ. 나를 생각하옵소서(Remember me)
  삼손이 절박한 심정으로 주 하나님을 찾습니다. 잃어버렸던 신앙의 언어를 입술에서 진솔한 심정으로 토해냅니다. 나를 생각하옵소서! 히브리어 '   '(자칼)은 알아보기 위해 표를 하는 행위로 정확한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지난 날 주 하나님과의 관계를 근거로 오늘의 나를 바로 알아주시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있습니다. 이전의 흔적이 현재의 올바른 기억으로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심정입니다. 힘의 근거인 머리털이 없어지고 멀쩡하던 두 눈마저 뽑혀버린 삼손을 누가 위대하게 여전히 생각해 주겠습니까? 이전의 화려한 명성이 현재의 실패로 깊숙이 묻혀버립니다. 삼손 스스로도 자신을 한물 간 인생으로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게다가 주 하나님의 영이 떠난 다음에는 더욱 영적 공황 사태를 맞는 고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미래가 보이질 않는 참담한 절망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삼손은 털썩 주저 않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빛난 업적을 그리워하며 자기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마냥 애석해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이 위기를 이 고통을 이 실패를 이 비참함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주 하나님 밖에 없음을 알고 다시금 주님께 나아갑니다. '나를 생각하옵소서', 바로 주님께 문제 해결의 열쇠가 있음을 깨닫고 자신의 아픔을 가지고 주님 앞으로 다가가는 모습입니다. 비록 주님의 말씀을 하찮게 여겨 크게 범죄한 몹쓸 죄인이지만 그래도 주님 품에 안길 수밖에 없다라는 고백입니다. 나 같은 죄인 누가 받아주십니까? 오직 주님 밖에 없습니다. 현재의 참담한 자신의 처지를 그래도 이해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주님 밖에 없다라는 심정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유일한 돌파구는 주 하나님이십니다. 잘하다가 어려움을 만나든지 아니면 잘못하다가 어려움을 당하던지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주 하나님을 찾는 일뿐입니다. 삼손은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당한 고통은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현재의 고통을 마냥 참고 있어서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 아닙니다.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나를 생각하옵소서!' 그래도 주님은 저를 잊지 않고 계시지요! 인간의 가장 큰 비극은 주 하나님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관심을 더 이상 받지 못하는 인생이 가장 불쌍한 자입니다.

Ⅱ. 이번만!(Just once more)
  제발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하는 삼손입니다. 우선 그는 주님과의 깨진 관계를 회복하기를 구했고 이어 한번 더 힘을 쓸 기회를 달라고 간구합니다. 무엇을 위한 기회입니까?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28절 하반절). 삼손 자신의 피맺힌 원한을 갚기 위한 기회를 달라고 주님께 기도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혼란스러워집니다. 개인의 원수 갚는 기회를 달라고 간구하는 삼손의 행위는 정당한가? 그런데 우리 주님은 삼손의 기도를 기꺼이 들어주십니다. 하나님도 삼손이 개인적인 원한 감정을 확 푸는 것을 기뻐하셨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기도는 동기가 중요합니다. 삼손이 마지막으로 힘을 쓸 기회를 달라고 한 것은 단순히 자신을 위한 기회로 사용하기 위한 이기주의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삼손은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원수 블레셋인들을 쳐부수어 자기 자신으로 인해 땅에 떨어진 존귀하신 주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삼손의 이러한 마음을 보셨습니다. 그러기에 삼손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주님 편에서도 바라볼 때도 하나님의 사람 삼손이 원수들에게 마냥 짓밟혀 수치 당하는 모습을 더 이상 놔 둘 수가 없고 아울러 가증한 우상을 섬기는 블레셋인들이 득세하여 주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을 용서할 수 없기에 삼손을 들어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삼손은 블레셋인들을 위한 노리개로 살고 싶지 않고 주님을 위해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심정을 담아 주님께 한번 더 기회를 달라고 절규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번만', '한번만' 할 때가 있습니다. 정말 무엇을 위한 '이번만'이고 누구를 위한 '한번만'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의 숨은 동기를 보고 계십니다.

  어떻든 간에 문제 해결의 열쇠는 주님이 쥐고 계십니다. 방황과 절망을 벗어버리고 주 하나님께 나아가야 살 길이 열리고 문제 해결의 문이 활짝 열립니다. 그리고 문제 해결 뒤에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 가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사사기16:28-31       삼손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

  우리는 연약하기에 주님께 범죄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 주님은 징계의 채찍으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징계 가운데서 원수의 조롱거리로 멸시받는 것을 주님은 오랫동안 방치하시지는 않으십니다. 높여져야 할 것은 오직 주 하나님의 영광인 것을 우리 주님은 아시고 때가 되면 징계 받는 우리를 일으켜 주십니다.

Ⅰ. 여전히 하나님은
  "그의 머리털이 밀리운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사사기16:22). 머리카락은 계속 자랍니다. 성경은 단순히 이러한 신체 변화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을까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 하나님의 삼손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삼손에게 넘치는 힘의 비밀을 그의 머리털에 숨겨두셨습니다. 그러기에 표면적인 현상으로는 삼손이 머리털을 자르지 않고 지내면 강한 힘을 소유하고 있고 반면에 머리털을 자르면 힘을 상실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삼손의 부주의와 방심으로 자신의 머리털이 빡빡 밀리는 비극을 당하였지만 다시금 회복의 조짐이 보입니다.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그러나 이 비밀을 블레셋 사람들이 알고 있음으로 예전처럼 삼손의 머리털이 자라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조금이라고 자랄 것 같으면 이내 밀어버리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삼손의 머리털이 멈추지 않고 자라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삼손은 신앙을 우습게 여겨 주 하나님께 범죄하였지만 우리 주님은 그러한 삼손을 영원히 떠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머리털을 밀리워 힘을 잃고 게다가 눈마저 잃어버린 삼손을 보고 그의 인생은 끝이 났다고 판단하였지만 우리 주님에게는 여전히 삼손의 자리는 남아 있었습니다. 삼손 자신도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하여 절망적이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 하나님의 신이 자기 자신을 떠났음을 뒤늦게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20절 하반절). 그러나 주님은 삼손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크게 범죄하였다 하여 주님과의 관계를 깨끗이 청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래서 넘어집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십니다. "그의 머리털이 밀리운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실패한 삼손을 우리 주님은 여전히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 하셨습니다.

Ⅱ. 다시 되찾은 주 하나님의 영광(28-30절)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한 상황으로 곤두박질친 삼손은 복수의 칼을 갑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힘이 없었습니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보낼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낄낄거리며 웃고 손뼉 치는 수많은 블레셋인들 앞에서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수치와 모욕으로 뒤범벅된 자신을 가까스로 추스르는 삼손의 모습은 눈물겹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원수들에게 짓밟히는 것처럼 더욱 주 하나님을 가슴 아프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삼손을 일으켜 세웁니다. 이는 삼손의 피맺힌 간구에서 시작됩니다(28절). 우리 주님은 삼손의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29-30절). 다곤 신전에 모인 삼천명의 블레셋인들을 한꺼번에 죽이는 사건으로 실추 된 삼손의 명예가 완전히 회복됩니다.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30절 하반절) 결국 삼손은 자신의 삶을 통해 주 하나님의 영광을 기어이 드러내고 맙니다. 하나님은 단지 삼손 개인의 원수를 갚게 해주시려고 삼손에게 마지막 한번의 힘을 공급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땅에 떨어진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드높이고 아울러 사랑하는 주의 자녀 삼손의 원한을 풀어주시고자 삼손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삼손이 있는 힘을 다하여 다곤 신전을 지탱하고 있는 두 기둥을 쓰러트려 집을 붕괴시킨 후 블레셋인 삼천명과 함께 죽는 장렬한 최후를 장식하는 광경에 우리는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 아닙니다. 실은 삼손의 장렬한 최후를 보면서 우리 주 하나님께서 어떻게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셨는가가 본문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사사 삼손을 가증한 다곤의 신전에서 가지고 노는 블레셋인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무섭게 폭발하였던 것입니다. 땅에 떨어져 실추된 주 하나님의 명예는 기어이 주님께서 회복시켜 놓으십니다. 오히려 그전보다 더욱 주님의 영광을 높이십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삼손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더더욱 주님의 자녀가 원수의 조롱 가운데 수치를 당하는 모습을 보시고 삼손을 다시 한번 세워주셨습니다. 그만큼 우리 주님은 삼손을 아끼고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크게 범죄하여 주의 징계 가운데 떨어져 있을지라도 여전히 주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삼손의 삶에서 우리는 긍휼이 이러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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