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ite   게시판   메일   M1000선교사홈   Mission Magazine

 

 
개역개정   KJV   NIV   공동번역   북한성경   Afr1953   BulVeren   Dan   GerElb1871   GerElb1905   GerLut1545   GerSch   UMGreek   ACV   AKJV   ASV   BBE   DRC   Darby   ESV   Geneva1599   GodsWord   HNV   JPS   Jubilee2000   LITV   MKJV   RNKJV   RWebster   Rotherham   UKJV   WEB   Webster   YLT   Esperanto   LXX(o)  
 현재위치 : HOME > 문서보기


 작성자  kcmseoul  작성일  2008-04-11
 자료구분  주제어  주제어  아도니 베섹을 생포한 유다
 내용

성경:사사기1:1-2            먼저 여호와께 물어라!

 

  우리네 삶에 대한 점검을 필요합니다. 삶은 진행되는 과정이기에 중간 점검은 필요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삶의 방향이 올바로 잡혀 있는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중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하나님께 우리네 삶의 방향에 대하여 지도를 받는 일입니다. 과정에서 뒤늦게 후회하지 않고 좀 더 삶의 내용이 하나님을 위하여 다듬어지기 위해선 이 면이 꼭 필요합니다.

 

Ⅰ. 행하기 전에 물어라(1절)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여호수아는 떠나갔지만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개인의 역사는 끝나도 주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 이어집니다. 여호수아의 시신을 땅에 묻고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금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무턱대고 전진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1절 하반절). 먼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주님의 지시를 구했습니다. '묻자와'는 원문 히브리어로 '   '(솨알)인데 허락을 받으려고 문의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주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기까지는 한발자국도 옮기지 않겠다는 자세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종은 주인의 지시에 따라 삽니다. 우리는 인생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지극히 정상입니다. 바른 믿음은 덮어놓고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떨어진 주님의 명령에 행동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등뒤에서 밀어주시는 분이 아니라 내 앞에서 나를 이끌고 가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은 '자기 개척'이 아니라 '주님 따르기'입니다. 내가 먼저 나서다간 일을 그르칩니다. 주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내 인생의 방향을 맞출 때 일은 되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겸손히 주 하나님의 지시를 기다립니다.

Ⅱ. 주님의 명령이 떨어지다(2절)
  하나님은 주님의 뜻을 보고자하는 자들에게는 숨기지 않고 밝히 알게 하십니다. 인생 개인의 삶은 각자의 의중에 있지 않고 주 하나님께 있다고 믿는 자들에게는 주님은 선한 뜻을 보여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 하나님의 의중과 지시를 구하자 우리 주님은 기꺼이 응답하셨습니다. "유다가 올라갈지니라"(2절 상반절). 행할 바를 몰라 주의 인도하심을 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말씀을 덧붙였습니다.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2절 하반절). 승리에 대한 축복을 다시 한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환기시켜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믿고 따르며 오직 주님의 지시를 받아 살기로 소원하는 자들에게는 이처럼 장래에 대한 확실한 승리를 보장하여 주십니다. 즉 주님 따르는 길이 진정 잘 되는 길임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가라 하시는 길로 가면 실패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주님이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자기 멋대로 발걸음을 내 딛다간 돌부리에 채여 거꾸러집니다. 별빛도 비추지 않는 칠흑 같은 밤길을 등불도 없이 가려고 고집부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주님의 명령이 밝은 빛으로 우리의 발길을 환하게 해 줄 때 비로소 안전하게 행할 수 있습니다.

  "행하기 전에 물어라!" 우리네 삶의 철칙입니다. 의욕도 시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과연 이 일에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하는 점입니다. 주님의 허락도 받지 않고 시도하는 것은 과욕이요 교만입니다. 혹시 주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진행시키고 있는 일이 있습니까? 즉각 멈추시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 보여도 거기에 주님의 뜻이 담겨져 있지 않다면 실패는 뻔합니다. 왜냐하면 그 일은 자기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려는 과정이지 결코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존재하는 일은 모두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앞서야 이루어집니다. 주의 뜻을 붙들지 않고 행하는 자는 살얼음판을 딛고 있지만 온전히 주의 뜻을 구하는 자는 굳건한 반석 위에 서 있습니다.  


성경:사사기1:3                 함께 힘을 합쳐

 

  어두운 밤 외진 골목길을 홀로 가자면 무섭지만 작은아이라도 손을 잡고 지나면 마음이 든든합니다. 함께 있을 때가 힘이 됩니다. 우리가 어떠한 목표를 정하고 뛰어갈 때도 가능한 서로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분리된 개체로 존재하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유기적 공동체로 살아갑니다. 혼자서 처리하는 일보다는 함께 힘을 모아야할 일이 훨씬 많습니다. 그러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된 지체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형제가 도움을 요청하면 도울 수 있고 또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형제에게는 언제든지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Ⅰ. 유다의 요청
  주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유다 지파가 먼저 가나안 정복의 깃발을 높이 듭니다. 이 때 유다는 형제 지파인 시므온에게 함께 갈 것을 요청합니다. 유다 지파 홀로 가나안을 상대로 싸움을 하는 것보다 두 지파가 힘을 합쳐 전쟁을 벌이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에서 시므온 지파에게 도움을 구합니다. "나의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너의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3절 상반절).

 

Ⅱ. 시므온의 협력
  이에 시므온 지파는 흔쾌히 동의하며 따라나섭니다. 지금은 애굽을 떠나 가나안을 향하여 길을 행한 지 사십 년이 훨씬 넘는 때입니다. 어서 빨리 떠돌이 생활 청산하고 한 곳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안정된 생활이 그립습니다. 이미 시므온 지파에게도 가나안 땅에 대한 몫을 배분 받았습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남은 일은 그곳에 올라가서 가나안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차지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아내와 자식들을 위하여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살면 됩니다. 그런데 유다 지파가 도움을 구합니다. 먼저 유다를 위하여 싸우고 나서 시므온을 위해 싸우자는 제안입니다. 나 자신을 위한 일은 뒤로 미루고 나서 먼저 유다 지파를 위해 싸워야하나? 우선 순위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단순히 재정적인 도움을 주는 일이 아닙니다. 생존의 문제를 놓고 목숨 내걸고 싸움터로 함께 나서는 일입니다. 매우 중대한 문제입니다. 인간적인 마음에 혹시 유다를 위하여 싸우다가 어려움을 당하여 나중에는 내 몫도 챙기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염려도 들것입니다. 유다 지파의 몫인 땅만 챙겨주다가 나는 힘을 다 소진하지는 않을까? 그러면 우리 시므온 지파는 어떻게 되나? 유다의 제안에는 실리적인 커다란 이해득실이 걸려 있습니다. 힘을 합쳐 싸우는 일은 좋습니다. 그런데 유다를 위해 먼저 싸우자는 말에는 신경이 쓰입니다. 유다를 위해 싸우는 동안 우리 시므온 지파는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시므온 지파는 유다를 먼저 돕기로 결정합니다. 마침 기업으로 받은 땅이 유다 지파하고 같은 방향이고 가는 길에 위치하고 있어서 함께 행동하는 것이 괜찮을 듯 싶어 기꺼이 동의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시므온이 유다의 요청에 망설이지 않고 응한 데는 적어도 두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함께 힘을 합치는 동역이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였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시므온 지파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우선 형제의 필요와 행복을 고려했다는 점을 높이 사고자 합니다. 그러기에 유다 지파의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건 싸움에 기꺼이 동참하였던 것입니다. 형제의 유익을 위하여 내 작은 힘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나는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시므온 지파가 가졌던 심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거운 짐도 함께 들면 한결 가볍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함께 감당하면 훨씬 수월합니다. 이기주의는 동역의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형제를 먼저 생각하는 사랑의 마음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동역의 자리로 이끌어 갑니다. 함께 힘을 모아 감당하는 것이 실제로 너와 나 우리 모두에게 유익 됩니다. 유다를 위해 먼저 수고와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시므온 지파의 열린 마음이 오늘 우리들의 마음이 되야 합니다. 형제를 위하는 일이 곧 나를 위하는 것이요 주님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맙시다.          


성경:사사기1:4-10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

 

 주 하나님은 공의(公義)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반드시 심판하심을 나타냅니다. 옳고 그름을 가려 행한 대로 갚으심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주님의 공의로우심을  믿고 끝까지 정도(正道)를 고집해야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Ⅰ. 유다의 승승장구(乘勝長驅)
  가나안을 우리 손에 붙이셨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전진하는 유다 자손들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대적하는 적들마다 유다 앞에 거꾸러지고 당해 내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편에 계셨습니다. 주님은 유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전적으로 따르는 유다 자손의 신앙을 보시고 주님은 그들을 위하여 싸우셨습니다. 누가 하나님을 맞서 싸우겠습니까? 만약 유다가 먼저 올라가서 싸우라는 주님의 지시를 받고도 두려워서 망설이거나 뒤로 몸을 뺐더라면 기쁨의 승리를 누리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전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역사가 따릅니다. 주님은 그의 믿음대로 갚아 주십니다. 유다 자손의 승승장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 순종의 결과입니다.   

 

Ⅱ. 아도니 베섹(4-7절)
  유다 자손과 맞서다가 패퇴한 자들 가운데 아도니 베섹이란 자가 있습니다. 싸움에 크게 패한 뒤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가다가 붙잡혀 유다 자손 앞으로 끌려왔습니다. 유다 자손은 아도니 베섹을 바로 죽이지 않고 먼저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끊어버렸습니다(6절). 엄청난 고통이 그를 괴롭힙니다. 양발과 양손의 엄지가락들이 잘린 그는 처절하게 울부짖었을 것입니다. 마취된 상태에서 썩은 살을 도려내는 수술을 받은 게 아니라 맨 정신에 멀쩡한 생살을 잘라내고 멀쩡한 뼈마디를 끊어내어 버렸으니 얼마나 그 통증이 심하였겠습니까? 형언할 수 없는 아픔에 까무러칠 지경입니다. 이때 아도니 베섹이 절규하듯 내뱉습니다. "옛적에 칠십왕이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찍히고 내 상 아래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나의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7절 상반절). "아, 결국 나도 내 죄값을 받는구나!" 한때 그가 칠십 명의 왕들을 사로잡아 모조리 손발의 엄지가락을 끊어낸 뒤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를 주어 그들로 하여금 주워 먹게 하며 즐겼는데, 자기 자신이 그러한 고통을 겪을 줄이야!  생으로 엄지가락들이 잘린 칠십 명의 왕들이 비명을 지르고 고통 하는 광경을 보며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어 미소를 지었는데, 자기가 그 꼴 날 줄이야! 칠십 명의 왕들을 굴복시킨 나를 누가 감히 대적하랴. 자만에 잔인함으로 똘똘 뭉친 아도니 베섹은 이 세상이 영원히 자기 세상인 줄로 여깁니다. 그러나 그는 땅에 있고 하나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그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의 저질은 행동을 다 보시고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웃에게 자비를 베푼 자에게는 자비를, 잔인함을 보여준 자에게는 그것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유다 자손이 아도니 베섹이 과거에 저질은 만행을 알고 있기에 복수의 차원에서 똑같이 앙갚음을 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유다는 아도니 베섹이 전에 무엇을 했는지 전혀 몰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다 자손은 승리자로서 단순히 자기 갈 길을 간 것이고 그것이 아도니 베섹에게는 과거 만행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아, 하나님은 나의 행위에 대하여 잊지 않으시고 계셨구나!". 뒤늦은 처절한 탄식이 아도니 베섹의 입술을 비집고 나옵니다. 주 하나님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보시고 기억하사 선악간에 반드시 심판하십니다(전도서12:14). 현재의 행위가 장차 공의의 하나님의 심판대 위로 올려집니다. 주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는 은혜의 복을 부어주시고, 자기 자신을 믿고 교만에 빠져 악을 행한 자에게는 두려운 심판으로 갚으십니다.   

 

 



   



  인기검색어
kcm  320900
설교  165667
교회  119705
아시아  95310
선교  91555
세계  81344
예수  79045
선교회  69494
사랑  65562
바울  65412


[배너등록]
 

 


홈페이지 | 메일 | 디렉토리페이지 | 인기검색어 | 추천사이트 | 인기사이트 | KCM 위젯모음 | 등록 및 조회

KCM 찾아오시는 길 M1000선교사홈 미션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