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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kcmseoul  작성일  2008-04-11
 자료구분  주제어  주제어  신실치 못함으로
 내용

성경: 레위기6:1-2              신실치 못함으로

 

  죄를 범하는 것을 두고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 죄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읽을 본문에서는 이것을 두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Ⅰ. 신실치 못하다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치 못하여 범죄하되"(2절 상반절). 하나님께 대하여 신실하지 않은 행위를 두고 죄라고 표현합니다. '신실하지 않은'(unfaithful), 하나님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가 곧 죄로 이어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이 깨질 때 죄는 나타납니다. 이것은 우리가 죄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실함을 전제로 합니다. "주의 모든 계명은 신실하니이다"(시편119:86). 신실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말씀이기에 신실한 계명입니다. 그 어느 계명도 신실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담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신실함을 생명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반응도 역시 신실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깨질 때 죄와 불법이 나오는 것입니다. 신실함은 두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바로 관계의 지속을 이끌어주는 연결점입니다. 서로를 믿고 신뢰할 때 정상적인 관계는 아름답게 유지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계명은 주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유지시켜 줍니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합니다. 또한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의 상태를 말씀으로 확인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사는 자라면 마땅히 주님께 신실함을 보여 드려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마음에 변함이 없다면 주의 계명에 대한 순종은 변함 없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바로 신실함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따르는 삶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우리는 주님과의 신실함을 깨트립니다. 죄의 열매를 맺습니다.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치 못하여 범죄하되".

 

Ⅱ. 죄에 대한 인식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범죄하였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내가 신실하지 못하였구나 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신실하다면 우리는 죄를 의도적으로 범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과의 신실한 관계를 손상시킬 두려움이 크기 때문입니다. 전적 의존적인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한 경우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았던 불신앙에 놀라며 또한 신실하신 하나님의 속성이 담긴 말씀에 대한 침범을 한 고약한 자신의 패역한 모습에 스스로 놀라워하여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대하여 신실하다면 어찌 죄를 범할 수 있으랴! 입으로는 믿음을 말하나 실제로는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지 않았던 자신의 태도에 가슴을 치게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신실하신 것처럼 우리도 동일하게 주님께 대하여 신실하기를 원하십니다. 신실해야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아십니다.


성경: 레위기6:1-7                 무슨 허물이든지

 

  죄를 범하는 인생들, 그리고 그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죄에 대하여 용서하실 수 있으신 분은 오직 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대가 없이 죄가 용서함을 입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죄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합니다.

 

Ⅰ.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죄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였을 경우를 말합니다. 특히 물질적인 피해나 금전적인 피해를 입혔을 경우가 해당됩니다. 그러한 죄에 대하여는 2-3절에 나옵니다. "곧 남의 물건을 맡거나 전당잡거나 강도질하거나 늑봉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남의 잃은 물건을 얻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에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강도질하던지 혹은 유실물을 습득하든지 혹은 전당잡든지 혹은 부당한 이득을 취하든지 간에 이로 인해 물질적인 금전적인 손해를 입혔을 경우입니다. 여기에 정직하지 않은 태도까지 맞물려 돌아갑니다. 이와 같은 경우엔 사실이 드러나고 전모가 밝혀지면 물건 주인에게 다시금 돌려주어야 합니다. 원상 회복을 전제로 하되 반드시 5분지 1을 더하여 배상하여야 합니다. "무릇 그 거짓 맹세한 물건을 돌려보내되 곧 그 본물에 오분 일을 더하여 돌려보낼 것이니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5절). 소위 위로금 내지 위자료를 반드시 본 주인에게 배상하여야 합니다. 원래의 가치에 더함이 원칙입니다. 다른 사람의 소유에 대한 귀중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한 이상으로 갚음으로 결국은 자기 자신이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 만큼 다른 사람의 소유에 대하여 임의로 탈취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일대일 배상이 아님을 알고 있다면 다른 사람의 소유에 대하여 존중하여 줄 것입니다.

 

Ⅱ.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는 또 그 속건제를 여호와께 가져올지니 곧 너의 지정한 가치대로 떼 중 흠 없는 수양을 속건 제물을 위하여 제사장에게로 끌어 올 것이요"(6절). 사람과의 관계에서 손해를 입힌 것에 대하여 본물에 오분 지 일을 더하여 갚았다 하여 끝나지 않습니다. 땅에서 매인 것을 풀었으면 이제는 하늘의 주 하나님에 대하여 매인 것을 풀어야 합니다. 죄에 대한 속죄의 예물을 반드시 드려야 합니다. 지정한 가치의 수양을 하나님께 속죄의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하나님의 속죄의 은총은 없습니다.

 

Ⅲ. 무슨 허물이든지

  죄에 대한 속죄의 요건을 갖추게 되면 무슨 허물이든지 다 사함을 얻습니다(7절). 용서에 대하여 우리 주 하나님은 인색하지 않으십니다. 무슨 죄악이든지 다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사함 받지 못할까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을 우리는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죄에 대하여 참 회개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범죄하고 또한 다른 사람을 걸고넘어진 죄에 대한 속죄의 방식은 다르게 나타납니다. 자신과 관계된 죄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속죄제를 드리면 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하여 해를 입힌 경우에는 반드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초래한 피해에 대하여 보상해야 합니다. 본물에 오분 지 일을 더함으로 충분한 보상을 하여야 합니다. 사람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에 대하여 거리낌이 없다면 무슨 허물이라도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다 용서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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